[상주읍성 완벽 복원 기대] 1910년대 상주읍성 사진 확보…발굴조사로 성벽·해자도 확인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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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6 07:25  |  수정 2022-01-26 09:02  |  발행일 2022-01-26 제3면
한 골동품상이 도쿄서 입수한
당시 사진 실린 우편엽서 7장
옛 모습 재현 결정적인 자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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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1870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상주읍성도(圖). 4대 성문과 성내의 시설물이 상세히 묘사돼 있다. 성내 중심 위쪽의 산이 왕산이며 그 아래에 동헌이 있으며 오른쪽 건물은 상산관으로 현재 상주경찰서 자리다. 〈상주시 제공〉
2015년 상주시는 서울의 한 골동품상에게서 일제강점기 우편엽서 7장을 구입했다. 1910년대 상주읍성 4대 문과 읍성 내 시가지 일부·상주재판소·상주수비대의 사진이 실려 있는 엽서였다. 그 골동품상은 일본 도쿄의 고서점가에서 일년에 몇 번씩 열리는 도서교환축제에서 그 엽서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서교환축제에서는 고서적 수집가나 서점 운영자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놓기도 하고, 관심있는 도서를 구입하거나 물물교환 형식으로 거래를 한다. 골동품상은 2014년 도서교환축제의 동아시아 관련 근대문헌자료 및 고문서 교환회에서 이들 엽서를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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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상주시가 입수한 상주읍성 북문 사진 엽서. 〈상주시 제공〉
상주읍성에 대한 기록은 상산지·신증동국여지승람·세종실록지리지 등 여러 역사서에서 찾을 수 있다. 성을 묘사한 지도도 있다. 그러나 이 몇 장의 사진들은 그 외의 모든 자료보다 더 구체적이고 결정적이다. 읍성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할 수 있는 확실한 자료가 확보된 것이다. 게다가 발굴조사로 성벽과 해자가 확인돼 문헌 속에서만 존재했던 읍성이 구체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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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상주시내 모습. 왼쪽 위에 왕산과 2층 누각인 태평루가, 오른쪽 위에 북문이 각각 보인다. 〈상주시 제공〉
상주 왕산
상주 관아의 진산(鎭山)인 왕산의 현재 모습. 〈상주시 제공〉
지난해 3월 한국문화재재단은 상주시 인봉동 35-5 유적에서 상주읍성 성벽 기저부를 발굴했다. 성벽의 체성부(성벽의 몸체 부분)는 1912년 일제의 읍성 훼철 당시 철거되고 지하 기저부만 남은 것이다. 기저부 위쪽은 임시 도로로 사용됐는데, 1913년의 지적도 상에는 이도로를 '성도(城道)'로 표기해 놓았다. 강점기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벽 자리 위에 건물들이 건축되면서 기저부도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였다. 이에 앞서 상주박물관은 2019년 인봉동 상주읍성지 1천210㎡를 발굴 조사해 해자(垓子·성 밖을 둘러 파서 물이 흐르도록 만든 곳)를 확인했다. 이 구역은 지적도에 구거(溝渠·도랑)로 표기된 곳이나 고지도와 문헌에 따르면 읍성의 해자가 지나가던 구역으로 추정됐다.

이와 같이 사진자료가 확보되고 발굴조사로 성벽과 해자가 확인돼 완벽에 가까운 문화재 복원이 가능하게 됐다. 상주시 관계자는 "읍성 복원이 다소 늦은 감이 있으나 사진자료가 나와서 더 정확한 복원이 가능해진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다행"이라며 "읍성 복원은 단순한 물리적 복원이 아닌 상주의 역사성을 고려한 사회 문화적 복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수기자 songa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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