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읍성 역사와 가치] 고려말 축조 왜구 방어시설…조선때도 유지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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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6 07:25  |  수정 2022-01-26 07:28  |  발행일 2022-01-26 제3면
조선시대 경상감영 자리해
경상도 행정 중심도시 역할
임란때 점령 당했던 아픔도

조선시대 읍성은 주로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고, 효율적인 지방통치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설치한 방어시설이었다.

상주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곳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이방제(里坊制·도시를 가로세로로 난 도로로 구획을 정하던 제도. 한 개의 이(里) 안에는 몇 개의 방(坊)이 있었다)의 적용으로 계획도시가 건설되는 등 일찍부터 도시의 공간구조를 가진 곳이었다. 고려시대 말기에는 왜구들의 침입에 따른 대비책의 일환으로 상주읍성을 쌓게 됐다.

경상도 속찬지리지(慶尙道 續撰地理誌)에 따르면 상주읍성의 축성 시기는 고려 우왕 11년(1385)이다. 상주읍성은 고려 말기 왜구의 침입에 대한 대비책으로 1381년에 읍성을 쌓기 시작해 1385년 완성되었고 이후 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시대의 상주읍성은 단순히 군사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경상감영이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찰사가 머물던 경상도의 행정 중심도시로서의 기능도 하게 되었다. 또 상주는 조선시대에 크고 작은 전란을 겪었던 격전지로 임진왜란 때는 왜군에게 점령 당한 상주읍성을 정기룡 장군이 다시 탈환했다는 역사도 간직한 곳이다.

상주읍성의 규모와 관련,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지형도와 지적도에 표시된 상주읍성의 둘레를 비교해 보면, 상주읍성의 둘레는 대략 1.53~1.7㎞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상주의 읍성은 1912년 일제의 도시화 계획이라는 명분 아래 일본인들의 상업활동 편의 및 주요 상가 요지들이 뺏기는 과정에서 읍성이 허물어져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하수기자 songa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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