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간장(艮醬) 이야기…장맛의 '발효과학'(1)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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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18   |  발행일 2022-02-18 제33면   |  수정 2022-02-18 08:12
韓, 메주로 된장·간장 두종류 담아 中日과 구별
집간장보다 달짝지근한 양조간장이 더 많이 유통
청와대 美대통령 만찬에 350년 씨간장 소개 화제
발효기간 따라 햇간장·청간장…5년 이상은 진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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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8년 차 옻된장 전문가로 활동 중인 박기영 시인이 특화 중인 어육장.

한식의 원류를 찾아 올라가면 어김없이 만나는 게 '장(醬)'이다. 크게 된장과 간장으로 양분되고 거기서 고추장도 파생돼 나온다. 고래로 절정의 음식, 그 승부처는 '간'이다. 간장의 간, 그게 '간'을 의미할까?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소장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무튼 '간'은 일차적으로는 소금 맛, 결국 '장맛'으로 귀결된다.

좋은 소금을 향한 선조들의 열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궁궐에 진상해야 될 천일염은 최소 3년 이상 간수를 제거해야 된다. 간수는 뜨거운 콩물을 만나면 응고 현상을 빚어 모 두부를 만들지만 일반 음식에 스며들면 간을 망치게 된다. 그래서 음식에 유별난 애정을 가진 남도의 요리연구가는 자나 깨나 간수가 완전하게 제거된 천일염을 갈구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등장하기 전까지 국내의 염전에서 생산된 굵은 소금은 식품에 사용될 수 없는 '광물류'로 분류됐다. 그 소금이 사용될 수 있는 용처는 김장용 통배추를 숨죽일 때 뿐이었다. 그래서 식품공전상 온갖 식품 제조에는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재제염(일명 꽃소금)'만을 사용토록 했다. 일부 천일염을 왕대나무통 속에 넣고 아홉 번 구워 만들어낸 죽염의 기능성이 과대선전되고 있지만 '몸에 좋은 소금'이란 표현은 현행 식품의약품법상 위법이란 사실은 일부 관계자만 아는 불편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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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만 발효식품이 있는건 아니다. 냉장기술이 발명되기 전 모든 민족은 실온에서 음식이 부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별별 발효 스킬을 다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스시도 한국의 가자미·명태 식해를 벤치마킹해서 탄생됐다는 게 유력한 학설이다. 유럽과 히말리야 고산족의 치즈, 돼지생육의 발효미학이 스며든 프로슈토와 하몽, 가다랑어를 베이스로 빚어낸 일본 가쓰오부시 등도 발효미학의 정점을 찍고 있다.

우리나라의 장 문화는 같은 두장(豆醬) 문화권에 있는 중국·일본과도 구별된다. 메주를 띄운 다음 된장과 간장이라는 두 종류 장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씨간장을 이용해 '겹장'의 형식을 거친다는 점이 다르다. 시중에는 조선식 간장(집간장)보다 달짝지근한 왜식 간장이 더 많이 유통된다. 이를 '양조간장'이라 하고 우리나라 간장과 구별하기도 한다.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는 "왜간장은 콩과 밀을 동일하게 사용하여 개량식으로 메주를 만들고 철저하게 관리하여 숙성시킨다. 밀전분이 들어가기 때문에 포도당이 많이 생겨 단맛을 띤다. 이때는 고형분을 된장으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메주를 우량 균주로 철저하게 분해하여 찌꺼기를 최소량으로 줄인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간장을 빼고 나머지 부분을 된장으로 먹는다. 왜식의 경우는 된장(미소 된장)과 간장을 따로 담는다. 왜식 된장은 콩과 밀가루를 섞어 만들기 때문에 단맛이 난다. 일본에도 관서지방에 가면 밀을 전혀 넣지 않는 '타마리 간장'이라는 한국식 간장이 있다.

조선조 명문거유 종부의 삶은 거의 접빈객 봉제사에 집중된다. 그걸 위해 매년 제대로 된 장을 빚는데 올인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방한 때 청와대 국빈 만찬에는 '350년 된 씨간장'으로 만든 한우갈비구이가 제공됐다. 외신들은 '미국 역사보다 오래된 간장'이라고 소개했다.

우리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낯설은 이 '씨간장' 개념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한국 장문화의 백미랄 수 있는 '겹장'의 스킬, 장의 발효과학을 우리 선조들이 멋지게 역이용했던 것이다.

간장은 발효 기간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있다. 2018년부터 청와대 관저의 전통 장을 담당하고 있는 고은정 한국간장협회 이사는 막 담근 새 간장은 '햇간장', 1~2년 정도 숙성시킨 간장은 '청간장', 3~4년 된 간장은 '중간장', 5년 이상 묵힌 간장은 '진간장'이라 명명한다. 진간장 중에서도 가장 맛이 좋은 것을 골라 오랫동안 유지해온 간장이 바로 '씨간장'이다. '하이브리드 펜티엄급 간장'인 셈이다. 이제 한식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간장인문학' 속으로 잠행해 보자.

대담=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소장·이춘호 음식전문기자
정리·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간장(艮醬) 이야기…장맛의 '발효과학'(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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