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간장(艮醬) 이야기…장맛의 '발효과학'(2)...메주덩이가 떠오를 때 간수 뺀 천일염 '간'이 승부처…용기·온도관리도 관건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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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18   |  발행일 2022-02-18 제34면   |  수정 2022-02-18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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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의 원류를 찾아 올라가면 어김없이 만나는 게 '장(醬)'이다. 크게 된장과 간장으로 양분되고 거기서 고추장도 파생돼 나온다. 고래로 절정의 음식, 그 승부처는 '간'이다. 간장의 간, 그게 '간'을 의미할까? 간장의 출발은 좋은 메주만들기, 그리고 그걸 갈무리할 수 있는 좋은 용기다. 그걸 잘 구비해놓은 곳 중 한 군데가 순창 고추장마을이다.


재료·달이는 방법 따라 '갱장' '마른새우장' '굴간장' 등 다양한 용도와 맛
일제강점기 후 왜간장·진간장 혼용 표기, 일본 잔재 '조선간장' 명칭 고집
어육장 주재료 꿩·토종닭·조기·전복은 비린내 제거 위해 건조 후 장 빚어
포항 '과메기 맛간장'·1천일간 숙성 거친 '죽장연' 신개념 장류문화 개척



'관자(管子)'란 책을 보면 서기전 7세기 초엽 중국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지금의 만주 남부인 산융(山戎)을 제압한다. 거기서 가져온 콩을 '융숙(戎菽)'이라 하였다고 한다. 숙이란 '콩'을 의미한다. '삼국지위지 동이전' 고구려조에 따르면 '고구려인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어떤 종류의 발효식품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서기전 4세기경의 황해도 안악3호고분의 벽화에 우물가에 놓인 발효식품을 갈무리한 듯한 독이 보인다. '해동역사(海東繹史)'에 따르면 발해의 명산물로 메주를 꼽고 있었다.

간장(艮醬)의 경우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8에 보면' '신문왕3년(683년) 2월조에 폐백 품목 중 간장·된장도 포함된 것'으로 보아 신라 초기에 된장과 함께 간장이 따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간장을 담아 식용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간장의 명칭도 여럿이다. 수장(水醬), 청장(淸醬), 감장(甘醬), 진간장(陣艮醬)으로 구분된다. 간장은 한국의 고유어 '간'에 한자 장(醬)이 결합한 말이다. 간은 '간간하다'라는 말의 어근으로 짠맛을 뜻한다. 그러므로 간은 우리의 고유어이고, 장(醬)은 한자에서 온 말이다. 고문헌에는 간장이 '한문(艮醬)'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훈몽자회에는 '간쟝'으로 표기돼 있다.

간장을 서울에서는 '지럼'이라 부르며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는 '지렁'이라 하는데 그 어근은 '질'로서 역시 '짜다'는 말과 '소금'의 뜻도 지녔다. 충청도 지방에서는 '지랑'이라고도 한다.

간장의 종류는 재료나 어떻게 달이느냐에 따라 그 이름과 용도, 맛이 사뭇 달라진다.

그 종류를 열거하면 갱장(羹醬·장국), 건대소하장(乾大小蝦醬·마른새우장), 기화청장(其火淸醬·밀기울장), 단지령(단간장), 례장(醴醬·맛 좋은 간장), 석화혜장(石花醯醬·굴간장), 자장(炙醬 ·달인간장), 준순장(浚巡醬·속성간장), 진장(眞醬·달인간장), 진장(陳醬·묵은간장), 천리장(千里醬·소고기간장조림)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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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된장고추장문화원과 〈사〉한국장류발효인협회는 지난 2일 '콩의 날' 행사를 전국 20개 지부에서 일제히 거행했다. 〈한국장류발효인협회 제공〉


◆수장 만드는 법

수장(水醬)은 주로 구이나 두부 찬품을 위한 조미료로 사용하기도 하고 음료로 마시기도 했다. 안동 출신 김수가 지은 '수운잡방(需雲雜方)'과 1923년에 나온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에는 간장 만드는 방법으로 수장법(水醬法)과 무장법을 소개한다. 수운잡방에는 "20말들이 독에 메주 1말가량을 독 바닥에 먼저 깔고, 독 중간쯤에 다리를 걸고 발을 편 다음 메주 7말을 발 위에 얹는다. 물 8동이를 끓여서 소금을 섞어 붓는데, 물 1동이 당 소금 8되 비율이다. 익으면 발 위의 장, 메주 7말을 걷어 내고 수장은 항아리에 옮겨 넣어 두고 사용한다. 이를 담수장(淡水醬)·담장(淡醬)·물장·무장이라고도 한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석달 안에 잘 띄운 바싹 마른 작은 메주 4~5개를 잘 씻어서 채반에 건져 다시 햇볕에 바싹 돌덩이같이 말린다. 이것을 다시 한번 씻어 좋은 물과 합하여 항아리에 담는다. 대략 물 1사발에 작은 주먹만 한 크기의 메주 2/3분량 정도를 넣는다. 항아리에 다 담으면 꼭지와 씨를 없앤 붉은 통고추를 넣는데, 물 1사발에 고추 2개 정도를 넣는다. 뚜껑을 꼭 닫고 차게 익힌다. 겨울은 7일, 여름은 3~4일이면 익는다. 뚜껑을 열어 보아 메주 덩이가 떠올라오면 익은 것이다. 그때 비로소 소금을 넣어 슴슴하게 간을 맞춘다. 떠서 먹을 때에는 고춧가루를 쳐서 먹는다. 두부를 집어넣었다가 수일 후에 메주 덩이와 함께 떠서 먹으면 고소한 맛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채로 썬 파와 초를 조금 넣고 먹는다'고 하였다.

영조실록 1737년 8월10일자에 따르면 '영조는 정신이 어지러워 마치 안개 속에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아침에 수장을 권하셨으나 끝내 입에 넣지 않았다' 고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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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개념 전통 장류문화를 개척하고 있는 포항 죽장연. 〈영남일보 DB〉

◆진간장의 뒷이야기

추사 김정희는 진장(陳醬)을 즐겼다. 그게 바로 '진간장(陳艮醬)'을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진간장이라면 바로 일본식으로 만든 공장 간장을 말한다. 1889년 발간된 부산부사에 의하면 1886년 일본은 우리나라에 최초의 공장이랄 수 있는 간장공장을 부산 신창동에 세웠다. 그 이후 일본 사람들은 마산 등지에도 간장공장을 세웠다.

우리 간장은 콩만을 원료로 하고 전분질을 사용하지 않는다. 주로 세균에 의해서 발효시킨다. 하지만 일본간장은 콩과 전분질의 원료로서 혼합 사용하며 발효균도 곰팡이를 사용한다.

요즘 유통되는 건 양조간장·혼합간장·산분해간장 등이 있는데, 대두 탈지대두 또는 곡류 등을 제국하여 식염수 등을 섞어 발효 숙성시킨 후 그 여액을 가공한 것이 양조간장이다. 이때 탈지대두 7% 이상을 사용하고 대두 또는 탈지대두를 혼합하여 사용하는 경우에는 9%를 사용한다.

혼합간장은 우리 재래간장 또는 양조간장에 산분해간장 또는 효소분해 간장을 적정비율로 혼합하여 가공한 것이나 산분해 간장 원액에 단백질 또는 탄수화물 원료를 가하여 발효 숙성시킨 여액을 가공한 것, 또는 이의 원액에 양조간장 원액이나 산분해 간장 원액 등을 적정 비율로 혼합하여 가공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산분해 간장은 단백질 또는 탄수화물을 함유한 원료를 산으로 가수분해한 후 그 여액을 가공한 것을 말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왜간장(倭艮醬)과 진간장은 동의어가 되어간 것 같다. 1936년 부임한 제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는 장유(醬油), 즉 일식 간장이 조선의 간장을 통섭함으로써 '선일융화(鮮日融和)'를 이루고 곧 조선 사람의 일본인화가 실현됐다는 봤다. 이 선일융화를 뒤이은 통치 구호가 바로 '내선일체(內鮮一體)'.

이러한 영향 탓인지 광복된 지 77년이 됐는데도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일본어 잔재가 많다. 우리 간장이란 의미로 사용하는 '조선간장'이란 표현도 어쩜 일본 잔재랄 수 있다. 학계·언론은 물론 모든 인터넷에서도 우리 간장을 그냥 '간장'이라 하면 될 것을 복합명사인 조선간장을 고집한다. 이는 언어부터 우리의 고유한 전통 간장의 가치를 폄훼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산분해간장을 '왜간장'이라고 부르는 건 모르겠지만 우리 간장을 굳이 '조선간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삼가야 할 것 같다.

◆별별 간장들

충북 옥천 금강 근처 산골, 옻특구에 사는 박기영 시인은 옻된장 특히 어육장(魚肉醬) 현대화를 위해 엄청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올해 18년 차 옻된장 구력을 자랑한다.

그는 해마다 어육장을 빚는다. 지난 7일 가족이 먹을 두 항아리 분량의 어육장을 담아 땅에 묻었다. 주재료는 옻된장, 양지머리, 꿩, 전복 등이다. 예전에는 조기도 사용했는데 비린내 때문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후숙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 특히 온도관리에 실패하면 어육장도 자연스럽게 망칠 수밖에 없다. 기온이 15℃ 이상 상승하면 안 되기 때문에 냉장고가 없던 그 시절에는 반드시 땅에 파묻어야 된다. 항아리 높이보다 30㎝ 더 깊게 파야 된다.

박 시인은 "어육장은 생선이 가미된 '어장'과 소고기 등이 가미된 '육장', 그리고 콩으로 담근 '두장'의 복합체"라고 주장했다. 궁중의 별미로 전승됐던 조미간장의 백미랄 수 있는 어육장이 현대로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다고 그는 안타까워한다.

어육장을 제대로 담으려면 몇 가지 제약조건을 전수해야 된다. 생선과 고기를 사용해야 되기 때문에 비린내 제거가 매우 힘들다. 얼치기 전문가들은 어육을 살짝 꾸덕꾸덕하게 건조해서 바로 사용한다. 게다가 오래 숙성하지 않고 바로 유통시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육장 만들기의 최대 승부처는 어딜까. 그는 "어육에 숨어든 핏기를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해 북어처럼 잘 건조 시켜 장 속에 집어넣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달성군 다사읍에 있는 정강희 두부마을의 정강희 대표도 2012년부터 고조리서에 입각한 어육장 만들기에 올인한다. 그녀는 규합총서와 증보산림경제에 나오는 스타일을 절충해서 만든다. 꿩 , 토종닭, 조기, 전복, 소고기 우둔살 등이 동원된다.

<사>한국장류발효인협회는 한국의 농사절기와 해학이 어우러진 절묘한 날인 매년 2월2일(콩이콩이)을 '콩의날' 로 제정해 콩재배농가·콩 가공농업인·장류 발효인들과 관련 행사를 치른다.

경북 포항에서는 특산물인 과메기로 만든 '과메기맛간장'까지 크라우드펀딩에 나섰다. 충북 보령시 성주면 심원계곡 심원마을은 고로쇠 장류 마을로 변신했다.

이밖에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사리 산골에 들어온 '죽장연'도 신개념 장류문화 개척자 중 한 곳. 2009년 창업된 죽장연은 마을 어르신과 동행하기로 맘을 먹는다. 200일간 콩 재배, 24시간 보관, 24시간 동안 불린 콩은 6시간 동안 삶고, 2시간 동안 뜸을 들여 메주를 만든다. 완성한 메주는 시렁에서 50일 동안 건조, 20일 동안 발효 과정, 이후 간수를 뺀 천일염과 만난다. 60일을 더 기다려 장을 가른 뒤 2년 이상 긴 시간을 장독대에서 숙성. 그렇게 1천일을 기다려야 전통장이 된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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