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600년 이어온 종가의 자존심, 대구 달성 현풍곽씨 종택을 찾아서

  • 이외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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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13   |  발행일 2022-03-23 제13면   |  수정 2022-03-1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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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화와 어우러진 솔례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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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 배롱나무가 사당을 지키며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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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보당 외삼문에서 바라본 포산고가.


대니산 지맥이 동남향으로 기울면서 지기가 모여 잉태한 구릉에서 취락을 이룬 솔례마을은 선대의 맥을 이어오면서 삼강의 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대표적인 집성촌이다.

대구시 달성군 현풍읍 대리 솔례마을(속칭 소리)은 마을명이 말해주듯 예절을 따르고 추앙하는 마을이라 하여 솔례(率禮)라고 불리운다

마을어귀 느티나무 아래는 잘 다듬어 놓은 화강석에 '충효세업(忠孝世業) 청백가성(淸白家聲)'이란 현풍곽씨 문훈비가 각자돼 있어 자못 마을의 기풍을 말해주듯 도도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 솔례는 청백리 곽안방 선생을 중시조로 모시고 있는 종택인 포산고가(苞山古家) 추보당이 있다. 1746년 창건한 추보당은 대구시 문화재자료 56호로 지정돼 있으며 1981년 일부 중수·개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약 1천400평 대지 위에 제청(추보당)을 비롯해 사당, 내삼문, 외삼문, 종택(솔례정사), 사랑채, 중사랑채, 창고, 기타 부속건물 11채로 일곽(一廓)을 이루고 있다. 현재 중손(곽태환·75세)이 거주·관리하고 있으며 추보당은 종택의 주건물로서 제청의 용도로 건립되었다.

조선조 세조 때 청백리로 녹선(錄選)된 곽안방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으며 추보(追報)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줄임말로 '조상의 덕을 생각하며 자신이 태어난 근본을 잊지않고 갚는다', 즉 효행을 실천하고 사람의 본분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곽안방 선생은 일찍이 무과에 급제 이시애난을 평정한 공로로 공신으로 녹훈되었으며 세조 연간(年間) 청백리로 녹선돼 국승(國乘, 나라의 역사)에 올랐다. 세종조 때 전라도 해남현감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어 청렴한 관리로 이름을 높였으며 익산군수를 마치고 돌아올 적에는 시종이 자물쇠 하나를 차고 오는 것을 보고 "나라의 물건이 어찌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겠느냐. 나를 더럽힐 수 없다"며 당장 돌려보내 공사가 분명한 일화가 전한다.


청백리로 칭하는 자리는 관리품계의 높낮이를 불구하고 가장 얻기 어려운 명예로 조선조 500년 동안 217명만 선정돼 그 이름이 유방백세(流芳百世)로 전한다. 사후 선생은 영구히 사당에 모셔져 불천위제사(不遷位祭祀)로 모시면서 음력 6월11일이 기일이다.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빙옥처럼 지초 같이 살다간 선생의 삶과 가르침이 작금 대한민국의 사회를 병 들게 하는 일련의 공직자들의 부정비리 등을 통렬하게 질타하는 채찍질 같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추보당 앞뜰에는 지금 봄햇살을 듬뿍 받은 홍매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가문비나무는 푸르름을 더해 운치를 보태고 있다. 후원에는 청백리를 상징하는 청솔과 오죽이 고고함을 뽐내며 종택의 고풍스러움과 더해져 멋스러움으로 가득하다. 사당 앞 수령 400년으로 추정되는 배롱나무 두 그루는 대구시 보호수로 지정돼 있으며 높이가 11m가 넘는 보기 드문 희귀목이다.

한편 현풍곽씨 종택은 사진 마니아들의 단골 출사지로 알려지면서 문중 참례객을 비롯해 탐방객이 연간 1천명 이상 내방하면서 지역의 명소가 되고 있다.

 

글·사진=이외식 시민기자 2whys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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