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규완 논설위원 |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경제의 순기능을 명징하게 설명한다.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맛있는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이나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이익을 챙기려한 덕분이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이익 추구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공의 이익으로 귀결되며 사회의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부(富)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성정이다. 물자의 유통 및 수요·공급 조절이 인간의 이익 추구와 시장의 자연지험으로 이루어지니 통치자는 이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동양판 '보이지 않는 손'이다. 이미 2천년 전에 시장의 자율기능을 꿰뚫어 본 사마천의 혜안이 놀랍다. 미국의 보수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 아인 랜드는 "이기주의는 선, 이타주의는 악"이라고 말했다. 시장경제를 추앙하는 도발적 경구다. 인간의 이기심이 경제활력을 추동하는 건 맞지만 지나친 이분법은 외려 섬뜩하다.
반론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통제 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일갈했다. 토머스 모어가 쓴 소설 '유토피아'는 공산(共産)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 교육과 종교의 완벽한 자유가 갖추어진 공동체를 이상국(理想國)으로 묘사했다. 비시장적 가치와 공동선(善)을 강조해온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시장은 정의로운가'란 화두를 남겼다.
하지만 시장경제를 통째로 부정하긴 어렵다. 윤 대통령 말마따나 시장경제는 번영과 풍요를 창발했다. 세계 일인당 소득이 급격히 늘어난 때는 18세기 말이다. 산업혁명과 자유무역 확산이 변곡점이 됐다. 국가 간 교역은 국제분업을 촉진했고 분업은 생산성과 기술 숙련도를 고양했다. 자유무역은 소득 증가와 삶의 풍요를 가져왔다. 글로벌 시장경제의 마법이었다. 애덤 스미스가 저서 '국부론'에서 분업의 효용성을 설파한 것도 그 즈음이다. 애덤 스미스의 절대생산비설과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생산비설이 국제분업의 이론적 토대가 되면서 자유무역주의 사조는 더 빠르게 파급됐다.
그런가 하면, 공산주의는 비효율로 좌절했다. 1990년 들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를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로 규정했다. '역사의 종언(終焉)'이란 말의 탄생 배경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계획경제, 통제경제에 대한 시장경제의 승리였다. 중국의 경제대국 반전 모멘텀도 시장경제체제 도입 아니었나.
윤 대통령 취임사 속의 '경제적 자유' 상찬(賞讚)은 다시 시장경제의 궤도를 깔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옳은 방향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주 시장 흐름의 물꼬를 틀어막곤 했다. 최저임금 급격 인상, 주52시간제 획일적 시행, 임대차 3법이 그랬다. 시장기능을 살리고 웬만한 규제는 풀어야 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긱 이코노미', 플랫폼 노동자 확산 등 노동형태도 복잡다단해졌다. 획일적으로 근무시간의 선을 긋는 건 대량생산 시대에나 통하던 복고방식이다. 시간이 아닌 성과와 실적이 평가의 잣대가 돼야 한다. 연마된 개인의 역량·지식·스킬이 그래서 중요하다. 실리콘밸리엔 왜 출퇴근 시간이 없을까. 연구개발이나 지식산업 분야엔 52시간제가 멍에일 뿐이다.
다만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의 정글자본주의, 극단적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신자유주의는 배격해야 한다. 윤 대통령도 "경제는 자유"를 외쳤지만 "정부 개입은 필요하다"고 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라고 한 밀턴 프리드먼조차 '음의 소득세'를 주창하지 않았나. '음의 소득세'는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일종의 기본소득이다.
다보스 포럼 창립자이자 자유시장주의 신봉자인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시장경제체제에서 '사회통합'이 빠져 자본주의 시스템이 문제가 생겼다.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개탄했다. 자산·소득 양극화와 경쟁에서 도태된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자본권력을 향한 원망이 서려 있다. 한데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선 '통합'이 빠졌다. 왠지 마뜩잖다. 시장경제 기조를 지키되 자본권력의 과잉을 경계해야 한다.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