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전문기자의 푸드 블로그] 나물전문점 '양가네가든'…전국 15곳서 공수한 나물거리 '산천을 담은 밥상'

  • 이춘호
  • |
  • 입력 2022-06-03   |  발행일 2022-06-03 제35면   |  수정 2022-06-03 08:11
나물줌마 여사장과 가족 의기투합
계절 나물별 맞춤 저장법과 요리법
식당 앞에도 직접 일군 다양한 채소
나물 반찬 30여종·묵은 김치도 별미
방풍·비트·냉이 등 10가지 재료 부각
계절마다 다른 다양한 국종류도 인기

2022060301000000900037331
1991년 7월 동구 불로동에서 '양씨네식당'을 오픈했다가 광우병, 조류인플루엔자 파동 때문에 나물전문점으로 터닝한 팔공산 양가네가든. 이 집은 이 땅에서 나오는 웬만한 나물 30여 종을 생채, 묵나물, 국 등 다양한 요리를 통해 새로운 식감을 느끼게 해준다. 나물박사가 된 양수조 사장이 남편 김충원과 가업을 이은 아들 김동률 사이에서 양가네 나물 엄지척을 하고 있다.

채소와 나물. 묘한 차이가 있다. 채소는 '트로트', 나물은 '포크송' 같다. 채소는 '개', 나물은 '고양이' 같다. 채소는 이미 인간의 품에서 일심동체가 되어버렸다. 상추, 쑥갓, 열무, 무, 배추…. 매년 파종 시기가 되면 꽃집, 종묘 가게 앞에는 별별 모종이 다 진열된다. 채소는 이미 '국민표'랄 정도로 대중적이 돼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야성(野性)'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봄을 주름잡는 달래·냉이·씀바귀·쑥·두릅·가죽나물·고사리·머위·곰취·참나물 등은 왠지 모르게 부족한 원기를 채워줄 것 같다.

◆나물줌마를 찾아서

언젠가부터 민들레, 쑥부쟁이, 개망초꽃, 방가지똥, 광대나물, 곰보배추, 소루쟁이 등 들녘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잡초 같은 숨은 나물의 명칭과 캐는 법, 요리하는 법, 독초와 구별하는 법 등을 알려주는 들판 심마니 버전의 유튜버들이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인간과의 관계망이 척박해지는 걸 야생초·산야초·반려식물 공부로 돌파하는 이들이 많다.

전국에 이런저런 나물 전문점이 적잖게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무늬만 나물집인 경우가 상당수다. 나물 종류도 일천하고 상당히 상투적이다. 나물의 물성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 산하에 종횡무진 피어나는 나물을 체계적으로 확보, 그 물성에 맞는 저장법과 요리법을 간직한 그런 고수식당이 정말 찾기 힘들어졌다. 나물도 철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영업을 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봄이 여름으로 건너가는 이즈음, 나물쟁이 같은 식당을 찾아봤다.

그런데 우연찮게 팔공산 자락을 품은 대구와 경산과의 경계에 있는 '양가네가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물줌마'로 불리는 양수조(59) 사장은 남편 김충원, 아들 김동률(31), 딸 김나영(24), 양사장의 동생, 바쁠 때는 조카까지 알바로 나서 가업을 지키고 있다.

양 여사의 친정 조모가 전주에서는 꽤 유명한 약방집 딸이었는데 그분을 통해 남도음식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28세에 결혼을 했다. 1991년 7월 동구 불로동에서 '양씨네식당'을 오픈했다. 처음부터 나물 외길의 삶은 아니었다. 돼지갈비 전문점이었다. 3년 정도 하다가 나름 장사가 괜찮아 가게를 좀 더 키운다. '양가네가든'이 된다. 소, 오리, 닭도 키웠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시절, 광우병에 이어 설상가상 조류인플루엔자까지, 2개의 대형태풍에 식당은 쑥대밭이 돼버린다. 망연자실,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조모의 신의 한수

그런데 친정 조모가 '신의 한 수'를 알려준다. 이후 그런 파동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나물밥집'이 괜찮을 것 같으니 한 번 해보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해서 2008년 처음으로 '산채정식'을 개발해 낸다. 다행히 동구 진인동 팔공산 자락에 괜찮은 문중 땅이 있었다. 거기에서도 꽤 풍족한 나물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이 부족해 전국에 수소문해서 제대로 된 나물 구매 시스템을 갖춰야만 했다. 영양 일월산, 영천 보현산, 영주 소백산, 팔공산 일원 등 전국의 15군데에서 다양한 나물 매입루트를 형성한다.

수급 시기는 3월 말~6월 말.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생나물거리와 말린 뒤 해를 넘겨서도 먹을 수 있는 묵나물(17종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법도 알게 된다.

식당 앞에도 나물군락지를 조성했다. 화살촉나물(일명 훈잎), 고추나물(일명 절춘잎), 다래순, 뽕잎, 단풍취, 병풍취, 우산나물, 이팝나물, 대나물, 호래비꽃대(일명 젓가락나물), 비비추…. 집단 재배를 위해 울릉도 취나물(참취), 오가피나무, 원추리, 두릅과 엄나무 등도 심었다.

2
죽나물, 미나리, 이팝나무, 아주까리, 비름나물, 산취, 고사리, 부지깽이, 참나물, 다래, 갯방풍, 땅두릅, 어수리, 엄나무, 분재나물, 명이나물, 참취, 오가피, 두릅, 거리대, 곤달비…. 게다가 별미로 등장하는 10가지 부각류(방풍나물, 감자, 비트, 김, 아까시꽃, 고추, 냉이, 연근 등), 장아찌류 등도 맛볼 수 있다.

◆나물의 향연

양 여사가 진두지휘, 직접 황홀하기까지 한 나물밥상을 차렸다. 기자도 이런 밥상은 처음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나물의 향연이었다. 얼추 30여 종의 나물이 총출동했다. 처음 온 손님들은 일상에서 듣지도 보지도 먹어보지도 못한 별스러운 나물에 탄성을 연발한다. '평생 이렇게 많은 밥상이 올라온 식당은 처음이다. 이 나물은 잡초인 줄 알았는데 식용이라니…', 나물에 대한 다양한 예찬과 호기심을 연발한다. 그런 반응이 이 식당을 반석에 올려놓게 된 건지도 모른다.

가죽나물, 미나리, 이팝나무, 아주까리, 비름나물, 산취, 고사리, 부지깽이, 참나물, 다래, 갯방풍, 땅두릅, 어수리, 엄나무, 분재나물, 명이나물, 참취, 오가피, 두릅, 거리대, 곤달비….

방풍나물, 감자, 비트, 김, 아까시꽃, 고추, 냉이, 연근 등 10가지 재료로 부각을 만들기도 한다. 장류는 당연히 직접 담그는 걸 원칙으로 한다. 단골이 탐을 내는 게 이 집 묵은 김치다. 김장철에는 사들인 배추가 작은 언덕을 이룬다. 고추장, 된장, 간장 그리고 김치, 이건 이 집의 수호신이나 마찬가지다. 그게 흔들리면 나물맛도 흔들리기 마련.

9년 된 된장은 세월을 품은 탓인지 중식당 춘장처럼 거무튀튀하다. 밥과 쌍으로 붙어 다니는 국도 절기마다 다르다. 봄철에는 '산나물어수리나물국과 쑥국', 여름에는 '참나물국', 가을에는 특히 단골로부터 인기 짱인 '송이무국'이 특미로 올라온다. 특히 가을철에는 버섯나라로 돌변한다. 송이, 능이, 싸리, 국더덕이, 망태버섯…. 정말 귀한 송이 장아찌도 비장의 무기다. 송이향 스며든 간장에 참기름 한 방울 넣어 밥을 비벼 먹어도 좋을 것 같다.

2월만 한숨 돌릴 수 있다. 식구는 이 식당에서 숙식한다. 양 여사는 오전 5시에 기상. 그래도 신이 난다. 장남이 가업을 잇겠다고 선뜻 나선 것. 경주 위덕대 호텔조리학과를 나와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근처 JW 메리어트 호텔 주방부에서 재직 중 어머니 부름을 받고 바로 짐을 쌌다. 딸은 동아대 화학과 출신, 약대생의 길로 가다가 식당일로 유턴을 해 버렸다 아버지는 주방, 어머니는 홀, 아들은 홀과 주방 사이, 동생은 카운터를 맞고 있다. 최강 '패밀리 파워'를 자랑한다. 양 여사 파이팅!

경산시 와촌로 팔공로 2길11. 낮 12시~ 밤 10시30분. 매월 둘째·넷째 수요일 휴무. 산채정식 1만원. (053)851-6127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3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