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국가 조문국으로 떠나는 의성 여행 .2] 의성 빙계군립공원

  • 류혜숙 작가
  • |
  • 입력 2022-06-14   |  발행일 2022-06-14 제12면   |  수정 2022-06-14 07:09
부처와 용이 한바탕 대결했던 계곡…곳곳엔 전설과 역사가 빚은 풍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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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8경 중 제일로 일컬어졌던 의성 빙계계곡은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실려 있을 만큼 예부터 그 명성이 자자했다. 계곡은 중생대 화산 활동에 의해 생겨났다고 한다. 부처님과 용이 이 계곡에서 한판 대결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

의성이 조문국이었던 시절, 왕국의 동남쪽에 있는 산의 형태가 누에 머리를 닮아 뽕나무밭을 개발하고는 산을 잠산(蠶山), 마을을 상리(桑里)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상리는 현재 금성면 명덕리의 자연마을로 여전히 그 이름이 전해진다. 이후 조문국에서는 잠업이 발달하게 되었으며 인접 국가에서 시찰을 올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조문국 왕은 잠종(누에알)의 저장에 고심하였는데, 왕국의 동쪽 계곡에서 얼음이 어는 동굴을 발견해 잠종을 저장했다고 한다. 그곳이 오늘날 의성의 명소인 춘산면 빙계계곡과 빙혈이다.

조문국 왕이 누에알 저장한 얼음동굴
원효·요석공주 전설 깃든 빙혈 등과
'빙계 8경'으로 남아 지역 명소 각광
최치원이 노닐고 김삿갓이 거닐던
빙계계곡은 국가 천연기념물 지정
류성룡·김성일 등 배향 빙계서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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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국과 이언적 등 6인의 위패를 모신 의성 빙계서원.

◆경북팔승지일, 빙계계곡

수십m 높이의 절벽이 둘러서 있다. 골짜기에는 크고 작은 암괴들이 흩어져 쌓여 있고 그 사이로 맑은 계류가 흘러 비경을 만든다. 이 계곡에는 삼복 때면 얼음이 얼고 엄동설한에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얼음구멍과 바람구멍이 있다. 그래서 산은 빙산, 그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는 빙계, 동네는 빙계리라 한다. 계곡 가운데 큰 바위에 '빙계동(氷溪洞)'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의 필적이라 전해진다. 그 옆의 바위에는 '경북팔승지일'이라고 새긴 아담한 돌비(石碑)가 올라서 있다. 경북8경 중 제일이라는 뜻으로 빙계계곡은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실려 있을 만큼 예부터 그 명성이 자자했다. 여름철 물놀이 하기 좋은 계곡이지만 상류의 제법 넓은 야영장과 캠핑장에는 매 계절, 계절 잊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주변에는 매점·정자·공동샤워장·놀이터 등 다양한 편의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계곡은 중생대 화산 활동에 의해 생겨났다고 한다. 그 이후에 인류가 출현했고, 부처님과 용이 이 계곡에서 한판 대결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이 건국되고, 명종 8년인 1553년에는 큰 지진이 났다 한다. 그때 남쪽 산과 이어져 있던 빙산의 일부가 붕괴해 하천이 생겨났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하천원출 빙산'이라 기록되어 있다.

긴 시간 자연과 전설과 역사가 빚어놓은 이곳만의 특별한 풍경을 빙계8경이라 한다. 제1경은 빙혈(氷穴), 2경은 물레방아(水礁), 3경은 풍혈(風穴), 4경은 석탑(石塔), 5경은 인암(仁巖), 6경은 불정(佛頂), 7경은 의각(義閣), 8경은 용추(龍湫)다. 부처님과 용이 한판 대결을 벌였을 때, 부처님의 무시무시한 쇠스랑이 용을 향해 날아가다 푹 찍혀 움푹 파인 곳이 제6경인 불정으로 빙산 꼭대기에 위치한다. 제8경인 용추는 절벽 아래 용의 머리가 부딪혀 생긴 깊은 웅덩이로 빙계계곡 공원 초입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승경이다. 지금은 거의 메워졌다고 하지만 전설은 깊다. 조금 더 올라가면 제2경인 물레방아가 재현되어 있다. 옛사람들이 곡식을 찧던 곳이다. 계곡을 따라 계속 오르면 길과 골짜기는 점점 좁아지고 가팔라진다. 그리고 마을과 함께 빙혈과 빙산사 이정표가 나타난다. 읏차, 소리가 절로 나는 골목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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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국 왕이 누에알을 저장했다는 의성 빙계계곡 빙혈.

◆빙혈과 빙산사

춘원 이광수의 '원효대사'에 보면, 어느 무더운 여름날 요석공주가 젖먹이 아들 설총을 데리고 원효대사를 찾아 이곳에 이르렀다고 한다. 공주가 동네 어귀에서 원효대사의 거처를 물으니, 사람들은 "빙산사 빙혈 속에 기도하는 이상한 스님이 있다"고 일러 주었다. 그리고 "빙혈을 지나면 찬바람이 씽씽 불어오는 풍혈이 있는데 얼마나 깊은지는 아는 사람이 없소. 그 끝이 저승까지 닿았다고도 하지요"라고 했다. 마을 안, 미로 같은 돌담길을 지나 뒤쪽 언덕에 오르면 빙계계곡의 제1경인 빙혈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다. 조문국 왕이 잠종을 저장했다는 동굴이다.

빙혈 입구 벽면에는 '조문국과 일본'이라는 제목의 글이 까만 석판에 새겨져 있다. '조문은 소문에서 나온 이름으로 여권 중심의 나라였다. 귀도(鬼道)와 주술을 잘하는 불미구가 왕이 돼 1천년 동안 30대가 이어졌으며, 이때 조문국 왕자가 변한과 왜국으로 넘어가 왕이 되기도 했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조문국의 기원을 기록한 글로 일제강점기 현 금성면 산운초등 교장이었던 일본인 하기시마와 의성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이 함께 저술한 '미광'이라는 책에서 정리한 것이다. 1926년 발행된 미광은 조문국의 실체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사료다.

빙혈은 오싹할 만큼 시원하다. 벽면에는 부적과 같은 난해한 그림과 '선한 자는 흥하고 악한 자는 망한다'와 같은 문구 등이 빼곡하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 문 속으로 내부가 슬깃 보이는데, 끝이 보이지 않아 멈칫하게 된다. 소설 속 요석공주는 좁은 굴속을 더듬더듬 기어들어 가자 점점 추워지고 전신은 꽁꽁 어는 듯했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굴이 넓어졌고, 허리를 펴고 팔을 둘러도 거칠 것이 없었다 한다. 빙혈에서 나와 위로 조금 더 올라가면 제3경인 풍혈이 있다. 입구는 빙혈보다 좁으나 그 깊이는 알지 못하겠다. 빙혈과 풍혈은 1908년에 발견되었으며 당시에도 잠종의 저장 장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빙혈 앞쪽에는 자그마한 대지가 안온하게 펼쳐져 있다. 이곳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빙산사(氷山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주춧돌 몇 개와 빙계계곡의 제4경이자 보물인 석탑만 남아 있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빙산사지 5층 석탑은 탑리의 석탑과 꼭 닮아 있다.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빙산사는 16세기 말까지는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의 감실 안에는 금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하며 왜군들이 훔쳐 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불상을 모셨던 대좌는 빙혈 입구에 보존되어 있다. 1973년 석탑의 해체 복원 때는 지붕돌 속에서 금동사리장치가 발견되기도 했다. 석탑 앞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정오가 되면 어질 인(仁)자 모양의 그늘을 드리워 인암이라 부른다. 빙계계곡의 제5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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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과 함께 1908년 발견된 의성 빙계계곡 풍혈.

◆빙계서원

빙산사지 아래에는 파평윤씨 윤은보(尹殷甫)를 기리는 의각이 자리한다. 빙계계곡 제7경이다. 윤은보는 임진왜란이 일어나 모두가 피난을 떠날 때 조선 중기 사림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과 조선시대 성리학의 선구적 인물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위패를 거두어 보관했다가 전후 빙산사에 모셨다고 한다. 원래 김안국의 위패는 명종 11년 남대천 상류 장천에 세워진 장천서원(長川書院)에 모셔져 있었다.

이후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조 33년인 1600년에 영천이씨 산운리 입향조인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이 중심이 되어 서원을 빙계리로 이건해 빙계서원이라 개칭하고 김안국과 이언적을 함께 모셨다. 숙종 15년인 1698년에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을 추가 배향했다. 빙계서원은 선현의 제사와 지방 교육을 담당해 오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었다. 현재 빙계서원은 빙계계곡의 입구, 용추 근처에 크게 자리한다. 2006년에 새로 자리를 마련해 재건했고 학동 이광준을 추향해 6현을 봉향하고 있다.

서원 앞 계곡에는 중년의 부부가 척추를 둥글게 말고 다슬기를 잡고 있다. 정수리 뒤로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 낭랑하게 들린다. 삼국사기는 신라의 석학 고운 최치원이 이곳 빙산에서 자주 노닐었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 김삿갓도 이곳을 거닐며 '굽이치는 냇가에는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떨어질 듯 매달린 틈에는 꽃이 피어 드리워졌구나'라고 했다. 바위틈에서 자란 나무가 점점 짙어져 가는 지금, 굽이치는 물가에는 물고기를 쫓는 아이들이 있고 찬바람 감도는 동굴에 얼굴을 들이밀고는 탄성을 지르는 어른들이 있다. 더운 날엔 찬바람 불고 추운 날엔 따스한 바람 부는 신묘한 땅. 의성 빙계계곡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이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참고=의성군지. 의성문화원.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의성군 문화 유적 지표 조사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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