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아의 방주'…야생식물 종자 13만점 영원히 지킨다

  • 황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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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3 06:51  |  수정 2022-06-23 08:25  |  발행일 2022-06-23 제5면
인류미래 지키는 씨앗금고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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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안에 있는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 전경. 작은 사진은 시설 내부 모습. 무려 13만8천103점의 국내외 야생식물 종자가 보관돼 있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제공>
 경북 봉화 춘양면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내에 위치한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BGSV)'는 북극해에 있는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글로벌 시드볼트와 함께 전 세계 단 두 곳뿐인 종자 영구 보존시설이다.

씨앗인 '시드(Seed)'와 금고를 뜻하는 '볼트(Vault)'를 합친 '시드볼트(Seed Vault)'는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를 비롯해 핵폭발·전쟁·기후변화 등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식물의 멸종을 대비해 만들어졌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고 불리는 이유다. 인류 미래를 책임지는 중요한 시설인 만큼 국가보안시설로 분류된다. 해발 약 600m에 돔 형태로 건설됐으며 세계 유일의 지하 터널형 저장시설이다. 씨앗은 지하 46m 공간에 보관 중이다. 종자가 깨어나지 않도록 1년 365일 상시 영하 20℃, 습도 40% 이하로 유지되며 종자 200만점 이상을 저장할 수 있다.

2018년 아시아 최대 규모(5천179㏊)인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안에 건립된 시드볼트는 수목원의 개원과 함께 본격적으로 야생식물 종자를 저장하기 시작했다. 2019년엔 천리포수목원을 비롯해 국내 종자 관련 기관과 개인 등으로부터 수탁받아 총 3천478종, 5만5천39점을 저장했다. 현재는 국내외 야생식물 종자 13만8천103점을 저장하고 있다. 국가보안시설로 지정되면서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시드뱅크에 보관 중인 농업용 종자(13만여 점)가 연차적으로 시드볼트에 중복해서 저장되기 시작하면서 그 양이 대폭 늘어났다. 농업유전자원센터의 시드뱅크는 종자 이용 목적에 따라 입고와 반출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시드볼트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반출이 허용되지 않는다. 또 노르웨이 스발바르 시드볼트는 농작물 종자를 저장하고 있지만,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는 모든 야생식물 종자를 밀봉한 블랙박스에 보관해 저장하고 있다. 현재 국내뿐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등 4개국의 종자도 저장돼 있다.

재난으로부터 식물멸종 대비
세계서 단 두 곳뿐인 시드볼트
지하 46m 공간에 씨앗 보관

국내외 연구기관과도 교류활발
열대식물류 영구저장방안 논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하 한수정)은 국외 주요 종자 연구기관과 활발한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2019년 스발바르의 시드볼트를 관리하는 노르웨이 북유럽유전자원센터와 업무협약을 맺고, 지구식물 종자의 중복저장을 통해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 2020년 스발바르 시드볼트에 종자를 중복 저장했다. 또 영국 밀레니엄시드뱅크를 관리하는 Kew식물원과는 종자의 저장연구와 연구자 간 협력체계를 구축했고, 아시아산림협력기구(AFOCO, 이하 아포코)와는 인공 종자 개발을 통한 열대식물 종자를 시드볼트에 영구저장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아포코 회원국 대부분이 동남아시아 열대우림 기후대에 속하고, 열대우림지역 70% 이상 종
6. 시드볼트 내부(2)
이 건조에 매우 취약한 비진정 종자(일정 수준 이하로 수분함량이 떨어지거나 낮은 온도 조건에서는 수명이 짧아지는 수생식물의 종자, 나무종자, 과일종자, 열대지방의 대립종자 등)다. 이러한 비진정 종자 중에는 바나나를 비롯한 인간 의식주에 꼭 필요한 종이 많다. 그래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시드볼트 영구저장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시드볼트는 비진정 종자의 영구저장을 위해 인공 종자 영구저장 기술을 개발하는 등 아포코 회원국의 종자를 시드볼트에 저장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개진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은 지난해 유엔산림포럼에서 산림 보전 관련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는 한국의 시드볼트가 기후변화와 전쟁, 핵폭발 등에 대비해 야생식물 종자의 영구저장 체계를 구축하고 건강한 인류의 삶을 위한 산림보전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한수정은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대형산불 등의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시드볼트의 역할이 산림생물자원 보존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이에 산불 피해지역의 산림자원과 천연기념물 등을 보호하는 중기 계획을 수립·추진하는 등 보전 가치가 높은 멸종 위기 식물의 복원에도 나서게 됐다. 대형산불 피해지역인 울진·삼척의 중요한 산림자원과 천연기념물 등을 보호하기 위해 시드볼트와 문화재청이 손을 잡았다. 금강송을 비롯한 황장목, 주요 천연기념물의 종자를 본격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 대형산불을 겪은 호주에도 종자 중복보존을 타진해 시드볼트를 통해 호주 식물 종자를 보존하는 방법 등도 논의 중이다.

이종건 국립백두대간수목원장은 "현재 기후변화 시대를 겪고 있는 우리보다 미래 기후위기 시대에 살아갈 후손에게 시드볼트에 저장된 종자는 무엇보다 높은 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뒤 "앞으로 후손에게 필요한 종자들이 저장되도록 체계를 더욱 탄탄히 하는 한편, 그 역할을 확대해 식물 복원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황준오기자 joon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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