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곰탕·설렁탕 '진국 열전'(1)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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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15   |  발행일 2022-07-15 제33면   |  수정 2022-07-15 08:50
서울서 강세 '설렁탕' 전국구로 성업중 '곰탕'
끓이는 시간·화력 소고깃국과 유사한 '설렁탕'
뼈·고기 푹 끓여 진액 추출하는 '곰국' '곰탕'

1면사용
설렁탕과 곰국의 차이는 조리학적으로 쇠고기를 끓인 것과 은근한 불로 오래 곤 것에 대한 차이로 구별된다. 설렁탕과 곰탕의 접점에 있는 것 같은 달성군 유가면 금산곰탕.

미식가 사이에 가장 논란이 많은 음식 중 하나가 곰탕과 설렁탕이다. 서울은 단연코 설렁탕이 강세이고 곰탕은 전국에 흩어져 있다. 곰탕의 경우 서울 '하동관', 나주의 '하얀집', 그리고 달성군의 '박소선현풍할매곰탕'이 전국구로 발돋움했다. 곰탕과 설렁탕, 이 둘의 어원은 전문가 사이에도 항상 차이를 보인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설렁탕이나 곰탕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 설렁탕집에서 설렁탕을 팔고 곰탕집에서 곰탕을 파니 그러려니 하고 먹는다. 어쩌면 설렁탕·곰탕집 주인들도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를 제대로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 옛 문헌 속으로 잠입해 보자.

조선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이 엮은 '산림경제'에 쇠고깃국(牛羹)과 쇠고기곰(煮牛肉)이 나온다. 쇠고깃국은 '국 끓이는 법이 사슴고깃국과 같되, 다만 염통·간은 반드시 중탕할 필요는 없고 솥에 고아 흐늘흐늘하게 익은 뒤에 먹는다. 다만 콩팥은 따서 안팎의 피막을 긁어 버리고 소금과 술은 좀 낫게, 초는 조금 부어 잠시 담갔다가 참기름 양념을 넣어 고루 섞어 끓는 물을 넣고 볶아 먹는다'고 했다.

반면 쇠고기곰은 '팔팔 끓는 물에 넣고 뚜껑을 덮지 말고 뭉근한 불로 오래 익힌다'라고 했다. 조리학적으로 보면 중탕할 필요까지 없는 쇠고깃국이 오늘날 '설렁탕'과 유사하고 뭉근한 불로 오래 익힌 '쇠고기곰'이 오늘날 곰탕이라 할 것이다. 설렁탕과 곰국의 차이는 조리학적으로 쇠고기를 끓인 것과 은근한 불로 오래 곤 것에 대한 차이로 구별된다.


1-1일면사용


조선 순조 9년(1809) 여성 실학자 빙허각(憑虛閣) 이씨(1759~1824)가 쓴 '규합총서' 중 '충주 검부 앞 셜넝탕' 대목이 보인다. 당시 셜넝탕, 셜렁탕, 설넝탕, 설녕탕, 농탕 등 1950년대까지 설렁탕 표기가 통일되지 않았다. 탕반 하면 대구가 따라붙는 것처럼 설렁탕 하면 서울(경성)이 따라붙는다. 이만큼 설렁탕은 서울의 명물이다. '설렁탕 팔지 않는 음식점은 껄넝껄넝한 음식점이다'라고 할 정도다. 1920년 경성 내외에 25군데 정도였던 설렁탕집은 1924년에 100군데로 급격하게 늘어난다. 1920년대 중반이 되자 '민중의 요구가 답지하고 조선사람의 식성에 적합한 설렁탕은 실로 조선 음식계의 패왕'으로 등극한다.

전통적으로 뼈나 고기 등을 오래 끓여서 진액을 추출하는 방식의 국을 '곰국'이나 '곰탕'이라고 한다. 곰탕은 1489년(성종 20)에 윤호·임원준·허종이 편찬 간행한 의학서 '구급간이방언해'에 나온 것처럼 '고은 국·곰국'에서 유래된 것이다. 1768년에 몽학훈장 이억성이 엮어서 간행한 조선 시대 어학서 '몽어유해'에 '몽골에서는 맹물에 고기를 넣고 끓인 것을 '공탕(空湯)'이라 하고 여기서 공탕이 곰탕으로 변화된 것으로 본다'라고 썼다. 그러나 아무리 음운변화라고 해도 조리학적으로 보거나 우리나라 육류 변천사로 볼 때 근거 없는 이억성의 주장에 불과할 뿐이다.

1800년대 말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저자 미상의 조리서 '시의전서'에는 '고음은 소의 다리뼈, 사태, 도가니, 홀떼기( 소 살코기의 한 부위), 꼬리, 양, 곤자소니(소의 창자 끝에 달린 기름기가 많은 부분), 전복, 해삼 등을 물을 많이 붓고 약한 불로 푹 고아 맛이 진하고 국물이 뽀얗다'라고 오늘날의 곰탕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나오는 '고음'이 지금의 곰탕인데, '고음'과 '곰탕'의 '곰'은 무슨 뜻일까. 우리 국어사전에서는 '고기나 생선을 푹 삶은 국'을 '곰'이라 하고, '고다'는 '뭉그러지도록 푹 삶다, 진액만 남도록 푹 끓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우리말 고다의 어근 고는 한자어 '膏(기름 고, 기름질 고)'에서 왔고, 고음(膏飮)이 한 마디로 줄어서 '곰'이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곰은 오다가 옴, 가다가 감으로 된 것처럼 '고다'의 이름씨로 쓰이면서 여기에 '국'이 덧붙어서 '곰⇒곰국⇒곰탕'으로 바뀌었다. 다시 말해 곰(고음)은 '기름진(膏·고) 음식(飮·음)'이란 의미다.

고기가 귀하던 농경민족은 큰 명절을 맞이하면 웃어른에 대한 고마움을 선물에 담아 표시했다. 이때 최고의 선물로 여기던 것이 소고기여서 한자어의 '선물(膳物)'은 '기름진 고기(月)로 선(善)을 베풀고 이러한 선물은 소(牛)의 고기가 물론(勿) 제일'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대담=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원장·이춘호 음식전문기자 

정리·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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