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욱 큐레이터와 함께 '考古 go! go!'] 대구 북부지역 관할 정치체 존재 보여주는 대구 구암동

  • 김대욱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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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29   |  발행일 2022-07-29 제21면   |  수정 2022-07-29 07:11
구암동5호분 축조시기 밝혀질 땐, 대구고분군 역사 '중요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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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동고분군 종합정비 조감도. <출처:영남문화재연구원 2019>

지난 4월 어느 날, 대구 칠곡 구암동고분군 중 5호분 발굴 현장설명회가 진행되었다. 평소 구암동고분군에 대한 관심도 컸었고 북구청과 함께 옛 발굴 자료에 대한 디지털 아카이빙 프로젝트로 진행하던 터라 발굴 상황을 더욱 면밀하게 관찰했다. 그날 현장에서 보고 여러 선생님과 나누었던 아이디어 몇 가지를 다음과 같이 페이스북에 기록해 두었다.

구암동5호분은 앞서 발굴된 구암동56호·58호·1호분보다 그 축조 시기가 조금 앞설 수 있다.(물론 부장 유물을 꺼내 상세히 비교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왜냐하면 앞서 발굴된 고분은 주곽과 부곽의 사이에 봉토의 중심이 지나가는데 5호분은 봉토의 중심에 주곽이 이미 설치되어 있고 부곽은 당초 설계하지 않았다가 늦게 축조할 계획을 세워서 끼워 넣은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즉 5호분 축조 이전에는 주곽만 축조하던 매장법에서 이 시기에 와서는 부곽 설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거나 제사법의 변화 또는 그 필요성이 대두되었기에 당초 주곽만 설치할 계획으로 주곽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봉토 내에 부곽을 끼워 넣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만약 이러한 가설이 추후 검증된다면 이 구암동5호분은 구암동고분군 축조에서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함지산 서남쪽능선 378기의 중대형 고분들 모인 구암동고분군
대구지역 중심 고분인 달성고분군과 비교되는 독특한 축조방법
신라식 토기 출토됐지만 투박하고 큰 사이즈의 장경호도 다수
신라 중앙통제 받으면서 달성집단과는 다른 집단 이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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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동고분군 출토 대부장경호. <출처:영남문화재연구원>

구암동고분군에는 아주 투박하고 큰 사이즈의 기대와 구암동 양식이라고 부를 만한 고배와 (대부)장경호가 다수 출토되었다. 이는 앞선 발굴과도 동일한 현상이다. 그런데 간혹 이질적인 형태의 (대부)장경호가 눈에 띈다. 구암동 양식의 그것보다 다소 밝은 색조를 띠고 구연이 다소 직립하며 동체부가 더 둥글다. 구경 외면과 동체 견부에 파상문이 새겨져 있기도 했는데 구암동 양식의 그것보다 훨씬 간결하고 깔끔하다. 결정적으로 외면에 묻어난 엷은 녹색 계열의 자연유가 부착되어 있다. 나는 이것들을 구암동에서 제작된 제지계 토기가 아니라 외부에서 유통·교환·수입 또는 부의품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 외부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아직 단정해서 말할 수 없지만, 이 항아리 안에는 특별한 음식을 담았을 것이다.

당시 발굴 현장을 재미있게 보고 기록을 남겼는데 기존 발표된 보고서를 꼼꼼히 살피거나 고고학적 논증 없이 쉽게 쓴 글이라 약간 마음에 걸리지만, 현장에서 받은 느낌이라 이 글을 읽는 고고학자들이 충분히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구암동고분군은 대구의 북쪽 팔거산성이 있는 함지산의 서남쪽 능선에 위치하며 대구의 북부지역을 관할하던 정치체의 존재를 보여주는 대규모 고분군이다. 이 함지산의 정상에는 팔거산성이 있으며, 남쪽으로 금호강과 접해 있고 북서쪽으로는 넓은 충적 평야와 이어진다. 구암동고분군이 분포하는 능선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있고 경사가 심한 편이다. 구릉의 능선상에는 직경 20~30m의 대형분이, 경사면 일대에는 직경 10m 전후의 중·소형분이 분포하고 있다. 최근 정밀지표조사에서 378기의 중·대형 고분이 밀집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고분 중 구릉 능선에는 주로 대형분이, 사면에는 중소형분이 축조되어 있다. 최근까지 도굴이나 민묘 조성, 산책로, 군사시설 등에 의해 훼손이 심한 상태였으나 2018년 사적 제544호로 지정됨과 동시에 고분군 일대에 대한 정비와 보존이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성과를 통해 볼 때, 고분의 구조는 적석봉분으로 이루어진 석곽적석분(石槨積石墳)으로 대구지역에 분포하는 다른 고분과 비교되는 아주 독특한 형태로 축조되었다. 이 중에서 1975년 영남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구암동56호분은 본분이 먼저 축조되고 그 북쪽에 북분이 연접되었다. 본분과 북분 모두 11형의 배치로 주곽과 부곽을 갖추고 있으며 길이에 비해 너비가 좁은 형태이다. 최근 56호분은 복원 정비를 위해 재발굴되었는데 그 결과 본분과 북분의 호석 범위와 규모, 평면 형태가 명확히 밝혀졌고 배장묘로 추정되는 고분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재발굴에서는 금동제 유리장식 수식부 세환이식 1쌍, 은제장식 삼엽환 두대도 등이 추가로 출토되었다.

2015년에는 구암동1호분이 발굴되었는데 이 고분은 함지산의 서사면 능선 말단부에 위치하여 너른 대지를 전망하기 좋은 곳에 축조되었다. 1호분은 3기의 봉분이 연접된 형태로 구암동고분군의 전형적인 특징인 적석석곽분으로 확인되었다. 2020년에는 구암동56호분에 접해있는 58호분도 조사되었으며 이 발굴에서는 고분의 형태와 규모뿐만 아니라 봉분 구획 석열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조사하여 적석 봉분 축조 비밀을 밝히는 큰 성과가 있었다. 최근에는 구암동5호분에 대한 발굴도 완료되었다.

구암동고분군이 언제 축조되기 시작했는지는 현재까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체로 5세기 중엽 이후 아래의 대형 무덤이 먼저 만들어지고 이어 중소형 고분들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고분에서는 신라식 토기와 금동제허리띠장식, 은제관식과 같은 신라식 위세품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양상을 통해 볼 때 이 지역 세력은 5세기 어느 시점에 신라의 영역에 들어갔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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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욱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

하지만 구암동고분군은 그 축조 방법이나 토기가 강한 지역색을 띠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즉 구암동고분군의 묘제는 석곽적석분 또는 적석석곽묘(지면 위에 돌을 쌓아서 내부가 일반 돌덧널과 같은 형상을 만든 것)로 부를 수 있으며 토기의 경우 대구지역의 중심 고분군인 달성고분군과는 달리 칠곡지역의 색채가 강하다. 이러한 현상은 이 고분군을 축조한 집단이 팔거평야 일대에 기반을 두고 성장하였다는 점과 신라 중앙의 통제를 받고 있었으나 달성 집단과는 또 다른 형태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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