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책사랑 주부수필 공모전 심사를 하며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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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03   |  발행일 2022-08-03 제26면   |  수정 2022-08-03 06:50
책은 한물갔다는 생각

공모전 작품 심사하면서

오판이라는 사실 깨달아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

책의 시대는 계속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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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운 문화부장

대구 달서구와 영남일보가 주최하는 '달서 책사랑 전국주부수필 공모' 예심은 문화부 기자들이 맡는다. 13회째인 올해는 총 538편이 접수됐다. 그중 필자는 130여 편을 심사했다.

주제는 다양했다. 독서모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체험담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임신·육아로 지친 주부들이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도 꽤 있었다. 책을 통해 삶을 되돌아본 이들의 사연은 하나 같이 감동적이었다. 책과 관련된 지난날의 추억을 곱씹는 응모작은 인간적인 향기를 품고 있었다. 70~80대 주부들이 보낸 작품을 읽을 때면 먹먹했다. 문학적 완성도를 떠나 몸소 겪은 응모자들의 체험담은 그 자체만으로 귀해 보였다. 책에 대한 생각이 펄펄 끓고 있었고, 글에 대한 욕구는 뜨거워 보였다. 진솔한 언어와 문장들은 때론 애틋하고 때론 따뜻했다. 마치 글 속의 현장으로 필자를 안내하는 듯했다.

무엇보다 자필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작품은 쉽게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몇 문장만 읽어도 당락을 결정지을 수 있었지만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100편이 넘는 글을 읽느라 지쳐갔지만 성심성의껏 정독했다. 누군가 자신의 글을 읽어 줄 것으로 생각하며 쓴 글, 그 글을 최소한 필자라도 끝까지 읽어주는 것이 도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들의 글을 감히 평가하는 것이 못내 죄스러웠다. 합격과 불합격으로 구분 짓는 일은 더욱 힘들었다. 구성이나 문장력 같은 문학적 기준보다 그들의 정성과 진심이 더 커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본심에 올리지 못한 작품을 한곳에 모으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무의식적으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심사가 계속될수록 쿵 하며 어디에 부딪힌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나름 다독을 하는 필자지만 책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문자의 시대는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고 여겼다. 누가 책을 읽고 누가 글을 쓸까 회의적이었다. 오판이었다. '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다'는 통계치가 연말 연례행사처럼 신문 지면을 채우고 있고, 책이 죽어가다 못해 확인사살까지 당했다는 끔찍한 말이 나올 정도지만,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깊이 사유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심사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책은 '인류 문명사의 원동력'이라고 한다. 정신을 진화시켜 온 자양분이기도 하다. 깊이 생각하고 오래 보는 것, 오래 보며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그 생각에 생각을 보태 사고의 높이와 깊이를 더하게 하는 것이 책이다. 단어들이 내재하고 있는 상징과 정서, 관념이 잠복된 문장, 행간과 맥락의 흐름에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 글의 배경에서 생겨나는 의미, 이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책뿐이다. 유튜브로는 대체 불가능하다.

세상이 변하고 세대가 바뀌면서 책을 소비하는 독자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영상 콘텐츠가 위세를 떨치면서 종이책을 찾지 않는 문화가 확산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게 책에서 이탈하려는 부류가 있는 반면에, 책에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길을 찾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 수치는 매우 유의미해 보인다. 이 때문에 책은 여전히 인류문명의 자양분이다.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 절대 없어지지 않는 문화다. 이 사실을 이번 심사를 통해 알고 됐고, 그 신념은 단단해졌다. 수상 여부를 떠나 '책 읽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538분께 감사드린다.
백승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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