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온라인 독서모임으로 책과 삶을 함께 나누는 대구 달서구 세모녀 이야기

  • 최지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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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09   |  발행일 2022-08-10 제12면   |  수정 2022-08-16 08:10
[동네뉴스] 온라인 독서모임으로 책과 삶을 함께 나누는 대구 달서구 세모녀 이야기
지난달 26일 온라인을 통한 가족 독서 모임을 마친 조선빈·주은 자매와 어머니 최정자씨가 7월에 함께 읽은 책인 '쇼코의 미소'를 들고 있다. <조선빈씨 제공>
[동네뉴스] 온라인 독서모임으로 책과 삶을 함께 나누는 대구 달서구 세모녀 이야기
지난달 26일 온라인 가족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조선빈·주은 자매와 어머니 최정자씨가 7월에 함께 읽은 책인 '쇼코의 미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취재를 위해 최지혜 시민기자도 이날 이들의 온라인 독서모임에 함께 했다. <조선빈씨 제공>
[동네뉴스] 온라인 독서모임으로 책과 삶을 함께 나누는 대구 달서구 세모녀 이야기
지난달 26일 온라인 가족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조선빈씨가 자신의 집 식탁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해 부산에 있는 동생 주은씨, 어머니 최정자씨와 책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선빈씨 제공>

여섯 살 딸과 갓 돌을 넘긴 쌍둥이가 잠든 지난달 26일 저녁 9시. 대구 달서구 유천동 조선빈(35) 집에서는 매달 이색적인 가족 모임이 열린다. 한 달에 한 권, 같은 책을 읽은 이후 부산에 계신 친정어머니와 여동생을 초대, 같은 시간에 온라인으로 만나는 것. 이른바 '세 모녀의 독서모임'이다.

첫아이를 키울 때만 해도 남편의 도움으로 오프라인 독서모임에 꾸준히 참여했던 조 씨는 쌍둥이 출산과 코로나19가 겹치면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자 온라인 독서모임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편하게 모임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평소 책을 좋아하는 친정어머니와 여동생이 떠올라 온라인 독서모임을 제안했다.

어머니 최정자(67·부산 남구 분포로)씨는 "아이 셋을 키우느라 지친 딸의 모습에서 여유가 간절해 보였다. 당장 달려갈 수는 없지만, 엄마의 마음이 항상 선빈이 곁에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모임이 거듭될수록 엄마로서 사랑을 주는 것보다 딸들에게 받는 사랑이 더 크다는 걸 느끼고 있다"면서 "결혼과 직장으로 해외나 타지에 자녀를 보낸 주변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있다"라며 온라인 독서 모임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지난달 26일, 이들은 모바일 기기의 화면을 통해 7월의 선정도서 '쇼코의 미소(최은영)'로 일곱 번째 '세 모녀의 랜선 독서 모임'을 가졌다. 이들의 대화는 소설 속 등장인물에서 자연스럽게 친구, 가족 이야기로 흘러갔다. 평소 어머니와 언니 조 씨를 롤 모델로 여긴다는 주은(33·부산 해운대구 센텀로)씨는 서로를 아끼면서 상처 주고받는 주인공을 보며 아버지와 갈등했던 때를 떠올렸다.

주은씨는 "지금보다 한참 어렸을 때 아빠에게 '저는 이런 것들이 불편합니다'라며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아빠도 같은 형식으로 답장을 주셨다. 그땐 아빠와의 다름을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아빠의 심쿵 포인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가족 중에서 아빠와 메일을 주고받은 사람은 '나'뿐"이라고 웃으며 자랑했다. 그렇게 독서모임은 가족들의 추억도 함께 소완해냈고, 그렇게 가족 독서모임은 옛 추억을 회상하는 징검다리가 되기도 했다.

'세 모녀 독서모임'을 주최한 조 씨는 "첫 책, '시선으로부터(정세랑)'로 시작한 첫날의 감동은 평생 잊기 어려울 것"이라며 "책의 내용 중 심시선 여사의 제사 부분을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럽게 엄마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엄마는 수목장을 바란다는 것, 제사상은 간소하게 아빠와 엄마가 좋아하시는 해물찜과 차를 올리거나, 책에서처럼 1년에 한 번 부모를 생각하는 가족 여행을 떠나도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슬프기보다는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지금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첫날이라 뭔가 어색하고 간질거리는 느낌으로 시작했지만 엄마의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고 있다는 생각에 '세 모녀 독서모임이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은 상상하기 싫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이에 대해 어머니 최 씨는 "첫 모임은 미리 쓰는 유언장 같았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에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책을 통해 물어주는 딸의 애정이 고마웠다. 나또한 부모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올해 1월부터 지금까지 세 모녀는 자신이 읽어서 좋았던 책, 행복한 삶을 사는 여성상을 제시하는 책 등 각자의 선정 기준으로 서로에게 책을 추천하고 함께 읽고 사유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함께 읽고 생각과 삶을 나눈 책은 △'시선으로부터(정세랑)' △'태도에 관하여(임경선)' △'여자는 계획을 세운다(메이 머스크)' △'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 △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존 셀라스)'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신순규)'△ '쇼코의 미소(최은영)' 등이다.

최근 조 씨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세 모녀 독서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고 싶다는 것.

"세월이 흘러 우리가 아이들 곁에 없을 때, 아이들이 힘을 얻고 위로를 받으며 추억할 수 있는 생생한 기록물을 남기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세 모녀 독서모임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사랑'입니다.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사랑의 느낌과 감동으로 세운 인생 학교에 내 아이들도 초대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크면 독서모임에 함께하고 싶기도 하구요"

이날 세 모녀의 독서 모임은 2시간을 훌쩍 넘어 자정 가까운 시간이 돼서야 끝이 났다. 밤이 깊어질수록 이들의 대화와 사랑도 깊어졌다. 조 씨의 바람처럼 그의 아이들에게도 가족 독서모임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최지혜 시민기자 jihye7988@naver.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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