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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 10년, 은영은 이사하는 데 도가 텄다. 결혼과 동시에 연극배우를 그만두고 학습지 교사 일을 하며 알뜰하게 살았지만 내 집 장만은 꿈도 꾸지 못한다. '갭투자'가 기승을 부리며 전세가는 가파르게 치솟는다. 결국 은영은 빚을 내서 경기도 외곽에 있는 좁고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를 마련한다. 내 집이 생기자 은영은 중산층의 삶에 편입한 듯 안정감을 느낀다. 은영에게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다. 평생을 바라 온 꿈이며, 곧 그녀 자신이다. 사회적 지위이며 계급인 동시에 노후를 책임지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집 장만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은영이 이사한 지역은 소각잔재 매립지 공사 문제로 주민들과 시청 사이에 갈등이 깊은 곳이다. 결국 매립지를 둘러싸고 흉흉한 소문이 돈다. 매립지가 들어서면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도시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린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은영은 아파트를 팔고 빨리 도시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아파트는 팔리지 않고 도시에 발이 묶이고 만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아파트를 앉아서 잃을 수는 없다. 결국 은영은 매립지 반대 투쟁위원회에 가입하게 된다.
'하우스 마루타'를 소재로 수박 한 조각 마음 편히 먹지 못하는 청년들의 현실을 담은 장편소설 '수박 맛 좋아'를 출간해 화제를 모았던 서경희 작가가 신작 장편소설 '복도식 아파트'〈사진〉를 펴냈다. 작가는 이번 소설을 통해 IMF부터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20여 년에 걸친 대한민국 부동산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깊이 있는 주제를 비판적이면서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서경희 작가는 2015년 단편소설 '미루나무 등대'로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수박 맛 좋아'와 외로운 이들에게 힘을 주는 소설 '꽃들의 대화'가 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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