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전문기자의 푸드 블로그] 선어 이야기, 숙성한 감칠맛 즐기는 선어회…대구는 미주구리 무침회가 별미 술안주 인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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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2 07:55  |  수정 2022-08-12 08:03  |  발행일 2022-08-12 제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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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동 '선어마을'과 함께 부산의 선어문화를 지켜나가고 있는 수족관 없는 서구 보수동 '용광횟집'의 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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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환할매집의 대표 메뉴인 병어 선어.

세계에서 가장 회(膾)를 좋아하는 두 국가가 있다. 단연 한국과 일본이다. 중국은 그걸 좋아할 것 같은데 전혀 반응이 없다. 한국은 활어권, 일본은 선어권이다. 일반인은 활어와 선어의 차이를 잘 모른다. 수족관에서 살아 있는 건 '활어', 그 대척점에 있는 죽은 상태의 생선이 바로 '선어(鮮魚)' 다.

어종 크기 따라 숙성 일수도 차이
여수 선어문화 부산 생선가게 영향
초장으로 버무린 회무침·회국수
먼 항해 지친 선원 입맛 사로잡아
식감보다 특유의 풍미·꼬린내 선호

부산서 40년 구력의 '동환할매집'
단골 입맛 꿰고있는 1세대 선어집
낮술 한잔에 선어 한 접시로 발길


활어와 선어 사이에 놓인 게 '빙장어(氷藏魚)'이다. 선어와 빙장어를 혼동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선어는 잡는 즉시 죽여 피를 완전하게 제거한 뒤 냉장숙성한 것이다. 빙장어는 죽은 상태에서 유통되는 것이라서 쉬 부패할 가능성이 높다. 선어는 당일치기의 경우 즉석에서 피를 제거해야 된다. 한국에서는 아가미 중앙(심장)을 찔러 흐르는 물에 씻거나 해수에 담가놓는다. 일본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케시메'라고 해서 생선의 양미간에 송곳을 깊숙하게 찔러 넣고 그 구멍 속에 철사를 넣어 사방으로 돌려 척수를 관통해 신경을 마비시키면서 핏물을 제거한다. 당연히 일본에는 활어를 위해 수족관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

선어회는 숙성이 핵심이다. 숙성 일수가 어종마다 차이가 많이 난다. 삼치, 병어, 다랑어 등 푸른 생선과 몸집이 작은 생선은 숙성기간이 상대적으로 짧다. 광어, 다금바리, 돗돔 등 흰살 생선과 대형 어종은 기간이 길다. 삼치와 병어 등은 대략 반나절, 심해어인 돗돔은 열흘까지도 숙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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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간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환할매집의 김영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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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만의 고등어 선어문화의 결정판인 시메사바(고등어초회). 영도의 '달뜨네'가 대표주자.


◆선어, 제2의 풍미

지금 우리나라는 죽은 생선은 똥값이다. 하지만 일본의 국민 횟감인 참치는 오직 선어로만 존재한다. 4~10일 저온 숙성을 시킨다. 싱싱한 생선은 즉살해 잘 숙성시켜 제2의 풍미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일본의 스시 집에는 수족관이 필요 없다. 우리나라 같으면 필수인 장거리 이동하는 수조차도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다.

얼음과 냉장고, 수족관, 수조차 등이 없었던 시절에는 살아 있는 생선을 즉석에서 먹는다는 건 선원 이외의 사람에겐 언감생심. 대구, 조기, 갈치, 삼치, 꽁치, 청어, 명태, 돔배기, 홍어, 고래고기, 고등어, 문어, 아귀, 참돔…. 70년대만 해도 대다수 생선은 선어류였다.

묵나물처럼 죽은 생선을 좀 더 오래 두고 먹기 위해서 별별 아이디어를 다 동원했다. 그중 하나가 소금 간독에 생선을 묵혀놓는 것이다. 소금·된장·고추장·간장독은 그 시절 괜찮은 냉장고였다. 그 과정에 염장 된 다양한 젓갈과 자반 생선류가 태어난다. 당화되는 쌀 등의 전분류를 이용해 식해류도 해 먹었다. 대표적인 게 가자미식해, 영덕 강구항의 밥식해(홍치 식해) 등이다. 그런 식해의 연장에서 태어난 게 일본 '후나(붕어)스시'다. 내장과 피를 말끔히 제거한 뒤 해풍에 말려 건어물로 판매하기도 했다.

전남 여수에도 진남루 바로 인근 골목에 선어회 골목이 있다. '희망선어'가 터줏대감 격이랄 수 있다. 이 문화가 부산 선어회에 영향을 미친다. 부산의 웬만한 생선 가게마다 사각형 유리함에 얼음과 생선을 채워놨다. 대구의 경우 미주구리(물가자미)가 선어회 형태로 강구항부터 대구권으로 확산했다. 불로동과 반고개 무침회 그리고 도심 곳곳에 있는 미주구리 무침회가 별미 술안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목포~신안권은 민어와 병어 그리고 흑산도~나주권은 단연 홍어가 대표적인 선어다.

◆수족관이 변곡점이었다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최첨단 냉동 운반기술 덕분에 활어를 원거리로 이동할 수도 있었고 횟집 수족관에 풀어놓고 활어 회로 팔 수도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 초부터 '선어시대'에서 활어 시대로 건너온다. 선어시대 때는 항상 식중독이 문제였다. 꾼들 사이에 나돌던 그 '아다리'에 잘못 걸리면 목숨을 잃기도 한다. 특히 요즘 같은 하절기에는 비브리오 패혈증 등이 생선 마니아를 노린다.

부둣가 뒷골목 식당가. 초입에 들어서면 초장 냄새가 진동을 한다. 주인들은 상비약처럼 식초에 고추장을 섞은 초장을 갖고 당일 어판장에서 헐값에 사 온 선어로 회무침을 해준다. 여느 포구의 식당가에는 초장문화가 짙게 스며들어 가 있다. 가장 활성화된 항구는 부산이다. 자갈치시장 속을 파고들면 올망졸망 따개비처럼 박혀 있는 묵은지 같은 선어식당 군을 만나게 된다. 먼 항해에 지친 선원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술안주 같은, 때론 한 끼 반찬이 되는 선어가 메인 메뉴로 등장한다.

광복동 회국수의 명가로 발돋움한 '할매집'의 유명 고명인 가오리도 부산 선어문화의 한 흐름을 장식한다. 그 회국수 때문에 비빔당면도 파생된다.

◆저마다 창법이 다른 선어들

목포, 여수, 통영, 삼천포, 부산, 포항 등 국내 큰 항구마다 선창 토박이들은 저마다 선어를 맛있고 안전하게 먹는 비법을 지니고 있다. 선어의 경우 된장과 초장을 적절하게 잘 섞을 줄 안다. 하지만 왜간장과 고추냉이 등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본바닥의 기운이 아니라 일반 소비자를 겨냥한 양념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들은 특이하게 당일 잡은 싱싱한 활어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씹힘성이 중요하지 않다. 선어 특유의 풍미, 그리고 '꼬린내'를 갈구한다.

기자는 지난주 부산 자갈치시장 주변 '선어문화벨트'를 살펴보고 왔다. 부산 전역은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점차 활어문화권으로 건너가고 있지만 여전히 심층부에는 선어꾼들의 이야기가 맥동 치고 있다. 지하철 자갈치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연결되는 충무동 해안시장, 새벽시장, 그리고 여인숙 골목, 그 심장부에 도열해 있는 별별 생선가게, 다 냉동된 걸 해동 시켜 선어 상태로 판다. 바로 거기에 40년 구력의 '동환할매집'이 있다. 동환집 좌우로 수야집과 할매손맛이 있다. 올해 86세의 김영자 사장. 손자 이름을 가게 상호로 정했다. 그날 빙장 되고 있는 어종은 딱 하나, 병어였다. 한창때는 수십 가지 그날 선어를 초장에 무쳐 냈다. 얼음 위에 올린 이 선어를 이 바닥에서는 '빙장회'로 부른다. 어떤 경우는 경매사, 선원 등이 가져온 생선을 바로 장만해 그들이 원하는 형태로 안주를 만들어낸다. 주문자 생산방식의 선어집이었다. 이게 초창기 회무침 형태의 선어시절이었다.

그런 집이 하나둘 늘어났다. 관광객은 그런 데를 알 수 없었다. 설령 온다 해도 분위기가 너무 꼬릿하고 폐쇄적이고 우중충해서 다들 기겁하고 핫플 횟집으로 갈 것이다. 오직 뱃사람만의 '선어공동체'였다. 가게 주인들은 단골의 입맛을 훤하게 꿰고 있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에 나오는 바로 그 선창의 분위기였다. 이젠 새로운 스타일의 선어집이 많이 생겼다. 겨우 자리만 지키고 있는 정도다. 동환 할매도 돈이 목적이 아니다. 그냥, 소일 삼아 여기로 나온다. 그래도 아직 이 바닥 뱃사람들에게는 '낮술 한잔에 선어 한 접시'로 유명한 1세대 선어집이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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