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진지 잡수셨는지요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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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08   |  발행일 2022-09-08 제23면   |  수정 2022-09-08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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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경북부장

지난 7월 경북 포항시의회는 임시회에서 '쌀값 폭락 극복 및 가격안정 방안 마련 촉구 건의안'을 시의원 전체 이름으로 채택했다. 시의회는 건의안에서 "쌀값 폭락으로 올해 추수를 앞둔 농민 시름이 더 깊어지는 가운데 비료·농약·영농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농촌경제는 버틸 여력이 없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지난 8월 구미시는 국회의원, 시의원, 농협조합장, 기업체 관계자 등과 함께 '구미지역 쌀 소비촉진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서는 구미쌀 소비 촉진, 쌀값 하락 방지 방안 등을 논의했다. 앞서 구미시는 쌀 재고량 감소와 구미쌀 소비 촉진을 위해 추경예산 8억원의 공적자금을 긴급 지원했다.

경북지역 시·군들이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경북의 쌀 생산량은 전국 상위권인데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매년 줄고 있다. 쌀값 폭락은 곧 농민의 소득 감소, 나아가 농업 생태계의 근간을 흔든다. 그러니 쌀농사를 많이 짓는 지자체들이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최근 코로나 사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물가가 급등하고 있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모든 곡물 가격이 치솟는데도 유독 쌀값만 떨어지고 있다. 쌀 생산 비용은 급등했는데 그 값은 떨어지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로 인한 농민의 절망감은 가히 짐작이 간다.

쌀값 폭락에다 산지 창고에 쌓여가는 쌀 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올해 들어 세 번이나 많은 양의 쌀을 시장 격리했지만 쌀값 내림세는 멈추질 않는다. 쌀값 폭락은 지난해 대풍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2년 전 흉작으로 쌀 생산량이 줄고 쌀값이 오르자 벼를 심는 농민들이 급증했다.

쌀 소비량 감소도 가격 하락을 부추기는 고질적 요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90년 119.6㎏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해 56.9㎏까지 줄었다. 이는 관련한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63년 이래 최저치다. 서구화된 식습관과 쌀을 대신하는 다양한 먹거리가 늘면서 쌀 소비 감소를 부채질했다. 변화의 흐름은 주위만 둘러봐도 확연하다. 빵집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나는데 떡집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다.

말 그대로 쌀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삼시 세끼 밥' '밥이 보약'은 옛말이 됐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진지 잡수셨어요'라는 인사마저 사라질지 모른다.

쌀은 주곡이면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담은 문화의 중심이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등 쌀과 관련된 속담만 봐도 쌀이 그동안 우리 삶 속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쌀은 그토록 소중했다. 이 같은 쌀의 추락을 보면서 내심 씁쓸하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우리는 곡식의 중요성을 재차 확인했다. 코로나 사태 직후 세계 쌀 수출 1위 국가인 인도와 밀수출 1위 국가인 러시아가 자국 내 식량안보 차원에서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가 재개한 바 있다.

며칠 뒤면 추석이다. 햅쌀 출하를 앞둔 농민의 얼굴이 환해야 할 터인데 그늘이 드리워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는데 풍요로움이 농민에게 오히려 눈물을 안겼다. 여기에 태풍 피해까지 덮쳐 일 년간의 고생이 수포로 돌아갈 상황이다. 매년 반복되는 쌀값 안정화 방법과 소비촉진 방안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모두 진지 잡수셨는지요.김수영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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