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재동 변호사 |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다. 뻔히 드러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한다. 하얀 거짓말(white lie)은 일상생활에서 듣는 사람을 위하여 악의 없이 인사치레로 하는 거짓말을 뜻한다. 요즘은 파란 거짓말(blue lie)이라는 말도 있는데, 자신이 속한 집단에 이득이 되라고 하는 거짓말을 뜻한다고 한다.
원래는 미국에서 경찰이 동료의 잘못을 덮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진 현실에서는 자신의 집단을 보호하는 것에서 나아가 상대방 집단을 공격하거나 자기 집단의 입장을 강화하는 거짓말에까지 의미가 넓어지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이슈가 제기될 때에는 논쟁으로 관련된 사실을 밝히고 이에 기반하여 결론을 내리거나 타협에 이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논쟁은 사라지고 잡담만 남았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모임에서도 정치 이야기는 금기가 되었고, SNS에서도 같은 입장인 사람들끼리만 모여 떠들다 보니 사실에 대한 확인은 없이 새롭게 제시된 정보가 자신들의 입지에 유리한지만 따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금방 거짓임이 드러날 사실들이 집단 내에서 널리 퍼지고 그 과정에서 더욱 과장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분열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객관적 평가가 아닌 충성의 서약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표현하였다.
거짓말은 나쁘지만 이러한 탈(脫)진실 사회에서는 집단의 이익에 부합하는 거짓은 버젓이 용인되고 장려되기도 한다. 거짓을 가려내고 징계하는 역할을 해왔던 공동체가 붕괴하여 개인이 고립되고 무력화되었고 이는 선동적인 포퓰리스트 정치인에게 좋은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 작금의 세계적인 현상이다. 정치가 경험법칙에 어긋나는 이적(異蹟)에 대한 확신을 공유하는 종교처럼 되고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 현상이다.
거짓 이슈들은 등장하자마자 빠르게 유통되었다가 뒤따른 이슈에 묻혀 관심에서 멀어지고 정작 거짓임이 밝혀질 때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초기에 그 신빙성을 판단하는 것은 오로지 개개인의 지적 능력과 노력에 달린 것인데, 지금의 인터넷 문화에서는 그런 능력이나 노력은 점점 찾기 힘든 일이 되었다. 책을 읽거나 깊은 대화를 하는 일이 드물어지고 모든 정보를 스마트폰을 통하여 얻는 것이 현실이다. 자극적인 이미지나 인상적인 짧은 문장을 통하여 얻는 지식으로 형성된 의견이나 믿음은 복잡다단한 현실에서 객관적인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는 참과 거짓, 선과 악을 준별하려고 노력하는 민주적 소양을 가진 시민을 전제로 한다. 우리가 파당적 입장에 서서 새파란 거짓을 반기고 받아들이는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선동적인 독재자의 등장을 위한 길을 여는 일이다. 냉전시대에 미국의 어떤 대통령은 제3세계의 잔혹한 독재자를 지원하는 것을 참모들이 말리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는 개새끼이지만, '우리' 개새끼야!" 요즘 진실에 눈과 귀를 닫고 유불리만 따지는 정치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그건 거짓말이지만, '우리' 거짓말이라고!" 이쪽이든 저쪽이든….
이재동 변호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