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의 한자마당] 어휘력 향상…한자 알면 그 글자 공유하는 낱말들 스스로 어휘 증식…독서 효율 높아져

  • 이경엽 한자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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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09   |  발행일 2022-09-09 제38면   |  수정 2022-09-09 08:21

[이경엽의 한자마당] 어휘력 향상…한자 알면 그 글자 공유하는 낱말들 스스로 어휘 증식…독서 효율 높아져
[이경엽의 한자마당] 어휘력 향상…한자 알면 그 글자 공유하는 낱말들 스스로 어휘 증식…독서 효율 높아져
이경엽 (한자연구가)

독서는 만능열쇠인가? 최근 이른바 '심심한 사과'란 표현을 둘러싼 논란이 여러 매체에서 보도되었다. 사연을 보니 어느 유명 웹툰 작가의 사인회 예약이 전산시스템의 오류로 차질을 빚게 되자 주최 측이 '심심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라고 트위터에 올린 내용이 그 발단이었다.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하다 등등. '심심(甚深)'이란 어려운 한자어 사용을 둘러싼 공방이 오가더니, 급기야 한국인의 문해력 저하의 문제로까지 비화하였다.

우리 국민의 문해력이 선진 여러 나라보다 낮은 원인을 어휘력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어휘를 늘리는 방법에 대한 처방은 대체로 둘로 나뉜다. 한자를 배워야 한다는 주장과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독서의 중요성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으나, 한자 교육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도 많다. 한자 공부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독서와 한자 교육 중 어휘력 향상에 더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작가가 책을 쓰는 가장 큰 목적이 독자의 낱말공부에 있지 않을 것은 짐작할 필요조차 없다. 독자로서도 책을 읽는 일차 목적이 낱말공부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읽음으로써 어휘가 풍부해질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효과일 뿐이다. 독서로 어휘를 늘리려면 책에서 접한 모르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뜻을 확인하고 문장에서 활용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한자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휘 증대 방법의 효율성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우리 국어사전은 낱말을 이루는 한자를 설명하는 데에 매우 인색하다. 한자와 낱말의 풀이가 서로 겉도는 경우가 많다. 한자어를 이해하는 데 한자의 도움을 받지 못하니 낱말의 기본 뜻을 알기 어렵고 오래 기억하기는 더 어렵다. 설령 한자와 연결하여 뜻을 풀어 놓아도 한자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한자를 모르면 같은 한자가 여러 낱말에 사용되어도 그 뜻을 공유하기 어렵다. 같은 한자가 들어간 낱말도 마치 다른 글자처럼 별도로 외워야 한다. 한자를 알면 그 글자로 연결되는 낱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스스로 어휘를 증식해 간다. 또한 한자어는 사전의 뜻풀이를 통째 외우지 않아도 직독·직해가 가능하므로 그 낱말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가 쉽다.

한자 공부에 대한 논란은 대체로 학습의 난도와 비효율성으로 귀결되는데, 교육 당국과 관련 학계는 이 문제를 개선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한자를 지금보다 더 쉽고 효율적으로 가르치고 배울 방법이 하늘 아래에는 없다고 포기한 듯하다.

어휘 늘리기 면에서 독서와 한자 교육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사람이 음식물을 충분히 섭취하여도 몸속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 비타민제를 따로 먹듯, 독서로만 해결할 수 없는 어휘의 문제를 한자 공부를 통해 보완할 수는 없을까? 아니, 한자와 한자어 능력을 기반으로 독서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은 없을까? 문해력 향상의 기반이 어휘력에 있다 할진대 독서가 만능열쇠라는 생각부터 거두고 하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자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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