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전문기자의 푸드 블로그] 사라져가는 향토음식 지키기 '맛의 방주' 프로젝트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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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09   |  발행일 2022-09-09 제35면   |  수정 2022-09-09 08:07
전 세계적 멸종위기 처한 동물종·식물종·치즈 등 종자·품목 찾아 선정
안동식혜·홍어 같은 지역 고유의 맛과 식재료 이용해 만든 가공식품
강술·꿩엿·댕유자·골감주·오분자기…제주도, 맛의 방주운동 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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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너무 가공식품으로 흘러넘치고 있다. 거기서 인간을 살려 낼 음식이 바로 맛의 방주다. 음식계에도 방주 프로젝트가 있다. '맛의 방주'(Ark of Taste·이하 방주)다. 1996년부터 시작된 국제슬로푸드협회 생물종다양성재단의 프로젝트로,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종자, 품목을 찾아서 기록한다. 주요 선정대상은 동물 종, 식물 종, 치즈 등 생산자들이 만든 식품들이다.

일단 구약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대홍수인 노아의 홍수 이야기부터 해보자. 하나님이 인간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고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40일 밤낮 동안 세계를 물로 가득 차게 하였으나, 노아와 그의 가족과 지상의 동물 한 쌍씩만이 이를 피하였다고 한다. '방주(方舟)', 노아가 하나님의 계시로 만든 네모진 잣나무 배이다. 그의 가족과 짐승들을 이 배에 태워 모두 대홍수를 피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맛의 방주& 슬로푸드

음식계에도 방주 프로젝트가 있다. '맛의 방주'(Ark of Taste·이하 방주)다. 1996년부터 시작된 국제슬로푸드협회 생물종다양성재단의 프로젝트로,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종자, 품목을 찾아서 기록한다. 주요 선정대상은 동물 종, 식물 종, 치즈 등 생산자들이 만든 식품들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 음식과 음식 문화자원을 재발견하고 가치를 부여해 지역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맛의 방주는 슬로푸드 운동에서 특정 식자재를 다루는 유일한 프로젝트이기에 소비자가 맛의 방주 등재 식품을 찾고 그것을 먹게 되면 소멸 위기에 처한 종자나 식재료를 지킬 수 있다.

방주 목록은 국제슬로푸드협회 홈페이지(www.slowfood.com)의 'Ark of Taste' 카테고리에서 나라별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협회는 2013년 '제주푸른콩장'을 방주에 처음 등재했다. 우리나라는 슬로푸드 운동을 하는 160개국 중 방주 관련 100종 이상을 올린 11개 나라 중 하나다. 올해 등재된 국내 품목은 모두 105개, 이 중 지역은 9개로 울릉도가 6개(섬말나리, 칡소, 옥수수엿청주, 홍감자, 울릉 손꽁치, 물엉겅퀴)로 가장 많고 이 밖에 경북 전역에서 먹는 팥장, 울진의 갯방풍, 영덕의 가자미밥식해가 뽑혔다.

슬로푸드가 잉태한 개념은 '슬로시티'. 슬로시티의 슬로푸드가 결국 맛의 방주가 되는 것이다. 슬로시티의 역사는 이탈리아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가 1986년 이탈리아 로마에 매장을 오픈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지역 고유의 전통 음식을 지키려는 모임이 곳곳에서 생겨나기 시작한다. 슬로푸드 운동의 세가 확장되어 99년 10월, 이탈리아의 그레베 인 키안티 시장인 고(故)파올로 사투르니니가 주위 여러 시장을 불러 모아 의기투합을 한다. 음식에만 국한하지 말고, 도시의 삶 전체에 느림을 도입하자고 맘을 모은다. 이들이 내건 운동명칭이 이탈리아어로 '치따 렌타(Citta Lenta)'나 '치따슬로(Cittaslow)', 이게 '슬로시티 운동의 기원이 된다. 슬로시티는 한마디로 정체성 없는 획일적인 대도시를 반대하는 운동이다. '슬로(Slow)'는 상당히 인문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단순히 패스트(Fast)의 반대 의미로 '느리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개인과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재인식하고, 여유와 균형 그리고 조화를 찾아보자는 의미다. 이는 결코 현대 문명을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위해 현대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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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6명의 대구경북 슬로푸드 회원 겸 요리연구가가 한국의 토종 식재료를 찾아 어렵사리 '대한민국 맛의 방주 향토편'을 책으로 묶어내면서 108가지 가장 한국스러운 방주음식을 재현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오른쪽 부터 최정민, 조은미, 서경희, 전효원, 엄희순, 강나윤.

◆맛의 방주 선택 기준은

어떤 음식이 방주의 맛일까? 일단 지역 고유의 맛을 가진 식재료와 식품, 지역 고유 토종 또는 야생종, 지역생산물을 이용해 전통방식으로 만든 가공식품, 지역사회문화와 지식이 연관된 품목이어야 한다. 지역전통의 조리방법과 가공법 및 독창적인 맛과 특성을 가진 식품이어야 한다. 좋은 예로 안동식혜나 홍어를 들 수 있다.

지역 토양(territory)의 특성과 지역사회의 기억, 정체성, 전통지식과 관련 있는 식품, 일정한 양만 생산되는 식품도 대상이다. 맛의 방주는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품목을 찾는 데 관심이 있다. 맛의 방주에 있는 품목들은 특정 지역과 지역사회 지식과의 연관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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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에 처한 식품도 해당된다. 만약 이 품목을 생산하기 위한 지식과 기술을 보유한 생산자가 매우 적을 경우, 고령자 어르신일 때는 더더욱 그 품목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볼 수 있다. 전통가공법은 장인의 기술이며 그 기술은 단기간에 습득되지 않는다. 또한 말이나 글로는 알 수 없는 특유의 감각을 길러야 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자가소비를 위해 생산하는 수준이라면 이 또한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신호다. 소비추세의 변화, 더 이상 진가를 알아주지 않는 품목을 소비하지 않는 시장, 지역인구 감소, 장인들의 생계를 위한 지역이주, 기술 대물림 중단, 지역생태계 변화, 국내외 농업정책지원자금 중단, 관계 당국의 관심 부족 등 소멸위기 원인은 여러 가지라 할 수 있다.

현재 제주도가 맛의 방주 운동에 가장 적극적이다.

현재 방주 품목에 등재된 것은 제주푸른콩장, 강술, 꿩엿, 댕유자, 순다리, 재래감, 재래돼지, 골감주, 산물, 다금바리, 오분자기, 자리돔, 우뭇가사리, 옥돔, 톳, 구억배추, 제주재래닭, 참몸, 제주전복, 제주 홍해삼, 제주고소리술, 붉바리 등 22개이다. 제주도는 옛 향토음식을 육성하기 위해 '2022년도 제주향토음식 육성 시행계획'이 수립된다. 시행계획에는 향토음식 도록(圖錄) 제작, 창업 및 요리교실 운영, 향토음식 품평회 및 경진대회, 향토음식 관광 콘텐츠화 지원, 향토음식점 표지판 제작 등 총 3개 분야에 12개 사업이 마련됐다. 이 과정에 제주의 7대 지정 향토음식이 태어난다. 자리물회, 갈치국, 구살국(성게국), 한치물회, 옥돔구이, 빙떡, 궤기국수(고기국수) 등이다.

남도 최초의 맛의 방주는 2013년 등재된 장흥돈차이다. 돈차는 서민과 상류층을 아우르며 이어져 온 우리의 전통차다. 고려 때에는 진상품으로 오르기도 했다.

2014년에는 남양주시가 '맛의 방주 전시관'을 유기농테마파크 내에 개관했다. 전시관은 224㎡ 규모로, 전 세계의 사라져가는 204개 품목의 음식과 종자, 130여 종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사진=김철성 사진작가
글=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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