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너거는 모린데이!…MLB 최고 유격수로 이름 날리는 김하성…'추성강대엽'으로 족보 바뀔까

  • 박지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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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16   |  발행일 2022-09-16 제37면   |  수정 2022-09-16 08:15

김하성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연합뉴스

중국 속담 중에 '문(文)에는 제일(第一)이 없고 무(武)에는 제이(第二)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쉽게 풀자면 이런 말이다. "문은 주관의 영역이라 1등을 가려내기가 무척 어렵지만, 무는 객관의 영역이라 1등을 가려내기가 어렵지 않다." 대충 맞는 소리 같다. 대한민국 최고의 시인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딱히 누구라고 대답하기가 난감해진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고의 야수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대답이 추신수라는 사실에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의 순위를 가리는 문제가 항상 추신수의 경우처럼 단칼에 딱 결판이 나는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논란거리가 흔히 팬들이 '추강대엽'이라 불리는 최고야수 족보에서 추신수 다음에 위치한 '강' '대' '엽'의 나래비에 관한 문제다.

우선 '강'에 해당하는 강정호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자마자 파란을 일으켰다. 첫해와 둘째 해 모두 A급 선수의 상징이라는 8할의 OPS를 기록했으며, 첫해에는 규정타석을 못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bWAR 3.9라는 믿기 어려운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파란은 음주운전이라는 또 다른 파란으로 갑자기 종료되어 버렸다. 그러자 추강대엽의 '대'에 해당하는 이대호가 슬며시 치고 나온다. 3년도 채 붉지 못한 꽃인 강정호 대신 일본리그를 평정한 그가 2위 자리를 차지해야 하지 않겠냐는 논리이다. NPB에서 이대호는 첫해, 전 경기에 출전하며 리그 OPS 1위에다 타점왕까지 해버렸다. 그 뒤 3년간의 일본 커리어 또한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매우 준수했으며, 이어 진출한 MLB에서도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는 '빠따는 역시 이대호'라는 명성을 제대로 지켰다.

'엽'에 해당하는 이승엽 또한 추강대엽의 꼬리에 위치한 것이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상위리그의 성적을 우선시하는 최근의 경향 탓에 압도적인 한국리그에서의 성적이 평가절하되고 있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비장의 카드가 남아있다. 바로 태극마크의 임팩트들이다. 이승엽은 시드니에서 마쓰자카에게 투런포를, 그리고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결승타를 때려냈다. 그리고 WBC의 초대 홈런왕이 된 데 이어 베이징에서 준결승 역전포와 결승 선제포로 전 국민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남자단체 구기종목 첫 금메달이라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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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 문화평론가

그런데 최근 족보에도 없던 새로운 2위 후보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바로 현재 MLB에서 대활약하고 있는 김하성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KBO에서 홈런왕, 타격왕을 한 적은 없지만, 유격수치고는 놀라울 만큼 대단한 공격력을 보여줬었는데, 수비 쪽에서는 살짝 아쉽다는 평가가 대세였다. 그런데 그가 지금 난데없이 메이저에서 최고 수비를 자랑하는 유격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심지어 최근 bWAR에서는 무려 4.0을 기록, 홈런을 뻥뻥 쳐내던 전성기의 강정호까지 넘어서 버렸다. 이렇게 되면 이제 '추성강대엽'으로 족보가 바뀔 날도 머지 않았을지 모른다.

새로운 선수가 등장하여 기존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차츰 나이를 먹어가는 나는, 내가 한창일 때 제일이었던 이승엽 같은 선수가 MLB에서 뛰지 못했다는 이유로 차츰 제삼, 제사, 제오로 밀려가는 것을 보면 뭔가 서글퍼지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꼰대 취급당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세대들의 통계와 서열, 야구관을 받아들이고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끝까지 승복이 되지 않는 것도 있다. 선동열을 메이저 근처에도 못 가 본 그런저런 투수 취급하는 경향이다. 그런 어린 팬들을 보면 정말 박정희 시대를 이야기하는 어르신 스타일로 이 한 마디를 꼭 해주고 싶다. "너거는 모린데이! 안 겪어보고 함부로 씨불이지 말그래이!"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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