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젓갈과 식해(1)…빨간 밥 도둑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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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16   |  발행일 2022-09-16 제33면   |  수정 2022-09-16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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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삭는다' 이 말은 한국의 젓갈과 식해의 물성을 단적으로 지적한 표현이다. 원 물성이 산소와 당분의 침공을 역이용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게 바로 삭은 음식인 젓갈과 식해랄 수 있다. 음식 고수들은 잘 안다. 서해는 젓갈, 그리고 동해는 식해문화권이라는 것을. 서해의 젓새우, 이것의 최대 공급처는 전남 신안군 전장포였다. 오월과 유월에 잡힌 새우를 갖고 오젓과 육젓을 담근다. 이게 논산 강경, 부안 곰소 등지에서 전국으로 널리 팔려나간다. 동해안의 속초와 영덕 등지는 가자미식해로 유명하다. 멸치젓갈은 경주 감포항이 유명한데 전라도에서는 젓갈이라고 하면 제1은 밤젓(전어 내장젓), 두 번째는 황석어젓, 세 번째는 토하젓이다. 이 삼종 젓갈이 남도밥상의 백미랄 수 있다. 경상도에서는 멸치, 꽁치젓갈을 운운하지만 전라도에서는 그걸 젓갈로 보지 않는다. 동해안은 역시 젓갈보다는 식해가 강하다.

동해안 속초·영덕에서 유명한 가자미식해
신안군 젓새우·경주 감포항은 멸치 젓갈
남도밥상 백미 '밤젓' '황석어젓' '토하젓'


젓갈(salted fermented food)은 물고기, 육류, 채소 등을 소금으로 절여 만드는 '염장법(鹽藏法)'의 하나로 태생된 음식이다. 소금을 이용한 염장법은 중국은 물론 일본, 인도,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방글라데시,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지역은 물론 유럽까지 즐겨 먹던 전통음식 중에 하나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양고기를 소금에 절여 먹었고, 로마에서는 생선을 소금에 절여 먹었다. 고대 서양 문명의 뿌리였던 로마인들은 항아리 안에 생선들을 넣고 소금을 뿌린 후에 두 달 정도 발효시켜서 '가룸(garum)'이라는 젓갈을 만들어 먹었다. 968년 신성로마제국(독일) 황제의 대사로 동로마에 파견된 주교인 리우트프란드는 동로마 황제 니케포루스한테 영접받는 자리에 나온 음식들마다 '역겨운 냄새가 나는 생선 소스'가 잔뜩 뿌려져 있어서 도저히 먹지 못했다고 기록을 남긴 바 있다. 1453년 동로마가 오스만 제국(터키)에 멸망 당하고 나서 가룸은 그 제조법이 끊겨 오랫동안 잊혔으나, 20세기에 들어서 로마 문화의 애호가들이 다시 가룸의 제조법을 연구하여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특히 고대 그리스의 주식은 죽 형태의 '브로스(broth)'인데, 생선으로 담근 젓갈을 조금씩 브로스에 넣어 먹으면 풍미가 좋아져서 당시 젓갈은 인기 있는 교역 상품이었고, 이 무역의 중심지가 바로 마르세유였다.

이탈리아는 지중해에서 잡은 멸치류의 생선을 소금에 절여 머리와 뼈를 제거하고 돌돌 말아 올리브유에 저장한 젓갈인 '앤초비(anchovy)'와 세계 최강의 악취음식 스웨덴의 청어 젓갈 '스루스트뢰밍'(surstromming·중국판 마파두부)을 만들어 먹고 알래스카에서는 연어 알이나 연어 머리를 따로 모아 젓갈 '스팅크 헤드(stink heads)'를 만든다.

고조선 시대부터 소금 사용…젓갈 만들어
어패류 살·알·창자 절여 2~3개월간 숙성
6~12개월 뒤엔 형태가 분해된 '젓국' 얻어


이렇듯 젓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적을 불문하고 즐겨 먹던 전통음식 중에 하나이다.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는 우리나라는 다양한 어류를 잡아 오래 저장해 두고 먹으려면 당연히 오래전부터 염장법의 하나인 젓갈을 만들어 먹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고조선 시대부터 소금을 사용했다. 고조선에는 지금의 랴오허(遼河) 강 서쪽 상류에 염수(鹽水)라는 소금강이 있었다. 이곳의 '소금우물(井鹽)'에서 퍼 올린 소금물을 이용해 소금을 생산했다. 한서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은 생선과 소금, 대추, 밤 같은 것이 풍족히 났다'는 것으로 보아 해안가에서 어업과 제염이 같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젓갈은 소금의 예술이다. 주로 어패류의 살, 알, 창자를 소금 20%에 절여 만드는데, 상온에서 2~3개월 숙성시키면 생선의 형태가 남아 있는 젓갈을 얻을 수 있으며 6~12개월 숙성시키면 형태가 완전히 분해된 '젓국'을 얻을 수 있다.

6세기 전반 중국 북위(北魏)의 가사협이 지은 농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 보면 한나라 무제가 동이족을 쫓아서 산둥반도에 이르렀을 때 어디서인지 코에 와 닿는 좋은 냄새가 있어 찾아보니 어부들이 항아리 속에 물고기 창자와 소금을 넣고 흙 속에 덮어 두었다가 향기가 생기면 조미료로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에는 오랑캐를 쫓다가 얻은 음식이라 하여 '축이(逐夷)'라 했는데 지금의 잘 삭힌 젓국과 같은 것이다.

대담=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원장·이춘호 음식전문기자
정리=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젓갈과 식해(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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