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젓갈과 식해(2)…서해~남해~전남 '젓갈문화권' 동해~경상도 쌀밥·엿기름 넣는 '식해문화권'

  • 이춘호
  • |
  • 입력 2022-09-16   |  발행일 2022-09-16 제34면   |  수정 2022-09-16 08:13

2022091601000231600009441
순천에서 만난 토하젓.

어류의 내장을 이용한 이 방법은 오늘날 내장젓갈 담그는 법과 다를 바가 없다. 송나라 양공(襄公)이 자기 부인을 장사 지내면서 무덤에 묻는 명기(明器)로 젓갈 100항아리를 썼다고 한다. 고려사절요 제4권에 보면 '봄부터 비가 오지 않으므로 왕이 정전을 피하고 조회를 폐지하며, 도살을 금하여 포와 젓갈만 쓰게 하고, 서울과 지방의 원통한 죄수를 심리하게 하였다'란 구절이 나온다. 이 당시 가뭄으로 흉년이 드니 도살을 금하게 하되 포와 젓갈 같은 저장 음식으로 육류 섭취를 대신하게 한 것이다. 특히 세종 때는 각종 제사에 젓갈이 제수로 올라갔으며 젓갈에서 벌레가 나오니 관계자를 파면시키기도 했다.

조선 왕실에서 명나라 황제에게 제공한 물품 중에 송어해와 송어염해가 포함되어 있었다. 모두 송어를 소금으로 절여서 만든 젓갈이다.

'음식디미방' 청어젓갈 담그기 기록
서해-새우젓·조기젓·황석어젓 유명
동해-명란젓·창난젓·대구아가미젓
전라도-게·전어·꼴뚜기 등 종류 다양
내륙에선 참게젓·토게젓 즐겨 먹어

벼농사지역서 발전된 발효식품 '식해'
조선시대 왕·백성까지 먹는 고급 음식
포항·영덕 추석음식 대구횟대밥식해
경상도 반가음식 '북어식해' '조기식해'


◆예전 젓갈은 '념혀'

조선 후기 학자인 김재로의 주석서 예기보주 12권 내칙 제12에 나해와 치갱(雉羹)이 나온다. 나해는 소라로 젓갈, 치갱은 꿩고기로 끓인 국을 의미한다.

5
속초 아바이 순대마을에서 만난 동태식해가 고명으로 올려진 잔치국수.

물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안을 가지고 있는 고온 다습한 동남아시아에도 염장법이 발달하였다. 말레이시아의 '벨라찬', 인도네시아의 '트라시', 필리핀의 '바고옹 알라망'과 '바고옹 이스다'는 모두 새우젓이다. 액젓으로는 인도네시아의 '케첩 이칸', 말레이시아의 '부두', 베트남의 '느억맘', 태국의 '남쁠라', 필리핀의 '파티스', 미얀마의 '응아피' 등이 있다.

일본은 어패류의 살이나 내장, 알 등을 소금에 절인 '시오가라(鹽辛)'라는 젓갈이 있다. 오징어로 만든 '이카노 시오가라'가 대표다. 주로 술안주로 먹는다. 일본 아키타 해안 지역의 도루묵과 정어리로 만든 '숏쓰루'라는 액젓도 있다.

안동 출신 장계향이 한글로 쓴 음식디미방에는 청어젓갈 만드는 법이 나온다. 이 책에서는 염해를 '념혀'라고 적고, '청어념혀법'을 맛질방문의 하나로 소개했다. 생선을 물에 씻지 말고 가져온 채로 자연히 씻어 항아리에 담고 소금을 넣는다고 적었다. 특히 청어보다 큰 방어는 썰어서 소금에 절인다고도 했다.

3
김에 싸 먹으면 밥도둑이 되는 진석화젓.

우리의 염장법은 단순히 어패류에 국한하지 않고 육류와 조류 등으로 그 영역을 넓혀 나갔다. 조선 정조 24년에는 공인(貢人)의 '구유재'(舊遺在·호조에서 공인들에게 공가(貢價)를 미리 지급하고 공물을 납품 받은 뒤 회계 처리하는 과정) 1만 섬을 분배하여 탕감해 준 별단에 '해식중미'가 있는데, 이는 돼지고기로 젓갈을 담근 뒤 그 위에 쌀밥을 얹은 음식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조선 시대에는 생선으로만 젓갈을 담근 것이 아니라 돼지고기로도 젓갈을 담갔다. 이렇듯 우리는 어패류를 이용한 어장(魚醬), 육류를 이용한 육장(肉醬), 어패류와 육류를 같이 넣고 담근 어육장(魚肉醬) 등으로 젓갈 종류가 나뉘는데, 그 가짓수가 무려 14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세종실록 권 128 제향찬품(祭享饌品)에 보면 생선젓, 토끼젓, 사슴젓, 기러기젓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왕가 중심으로 어패류가 아니더라도 수조육류(獸鳥肉類)로 젓갈을 담가서 제사음식에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역별 젓갈

2
전남 목포권의 밥상에 없어서는 안 될 젓갈 중 하나가 황석어젓이다.

지역에 따라서도 젓갈이 다르다. 서해안지역에는 새우젓, 조기젓, 황석어젓 등이 대표적이다. 동해안 지역에서는 명태의 알과 내장으로 담근 명란젓, 창난젓, 대구아가미젓 등이 유명하다. 밥·엿기름·무채·고춧가루 등을 넣어 담그는 가자미식해, 특히 동태식해는 강원도·경상도 지역 등을 중심으로 한 토속음식이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게, 전어, 볼락, 도마, 조개, 낙지, 꼴뚜기, 갈치, 소라, 병어, 토하 등으로 담근 젓갈 종류가 다양하다. 내륙지역에서는 참게젓, 토게젓을 담가 먹었다. 이 밖에도 천수만의 서산 어리굴젓, 제주도의 자리돔젓 등에서 지역 특색이 드러난다. 반찬용으로는 조개젓, 어리굴젓, 명란젓, 창난젓, 오징어젓, 낙지젓, 꼴뚜기젓, 성게알젓, 갈치속젓 등이 주종을 이룬다. 전국의 주요 젓갈시장으로는 충남 논산의 강경과 홍성의 광천 토하젓, 전북 부안의 곰소, 인천의 소래포구 등이 있다.

◆식해

한강이 소금과 염장 생선 및 젓갈을 내륙 구석구석으로 유통시켰다. 한강을 쫓아 올라가면 지금의 충주, 단양, 제천 심지어 영월까지도 물류 흐름이 수월했다. 염장 생선 및 젓갈은 오래 보관하며 먹을 수 있어 바닷길로도 먼 거리 항해를 가능케 했다.

식해는 젓갈문화가 벼농사와 함께 발달된 고도의 식품이라 할 것이다. 엿기름이나 쌀밥의 유산균 발효와 소금에 의하여 저장 보존되는 식품이다. 주재료가 엿기름, 쌀밥, 생선, 그리고 소금이란 점에서 볼 때 식해는 '벼(禾)'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식해는 전분이 발효하면서 유산이 생기고, 신맛이 나면서 부패가 방지된다. 물론 10%가량의 소금이 숙성을 증폭시키게 된다. 이제 서해와 남해 전남 광양까지는 젓갈문화권이 형성되고, 동해에서 경남 하동까지는 식해문화권이 형성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왕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널리 즐겨 먹던 고급 음식이 바로 식해(食해·fermented fish)다. 감주로 알려진 식혜(食醯)도 엿질금을 삭혀 만든 거라서 식해의 연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안동식혜'가 대표격이다.

부새우젓
서해안권 토박이들에게 인기인 부새우젓.

젓갈이 각종 어패류와 소금이 생산되는 해안지방에서 시작되었지만 이 젓갈이 쌀을 주식으로 하는 전통 벼농사문화권에서 상용되면서 발전된 발효식품이 식해다.

식해를 만드는 사람은 먼저 고기를 포로 떠서 잘게 저미고, 기장, 쌀가루 및 소금으로 버무린 다음 좋은 술에 적셔 항아리 속에 넣고 흙을 발라 100일 동안 두면 숙성된다. 그렇다면 모든 식해에는 반드시 쌀가루를 섞는다. 따라서 지금의 식해는 바로 그것이 조금 변하여 이루어진 것이라 할 것이다.

명나라 사신들이 약 석 달 반을 머물고 7월19일 베이징으로 떠날 때 조선 조정에서는 이들에게 수조기식해 6통, 잉어식해 1통, 가리맛식해 9병을 황제의 선물로 보냈다.

우리나라에서 식해는 주로 동해권과 경상도 지방에 다양하게 분포되어 맛을 사로잡아 왔다. 어류로는 가자미, 갈치, 광어, 노가리, 대구, 도다리, 도루묵, 멸치, 명태, 뱅어, 우럭, 전어, 전갱이, 조기, 쥐치, 홀때기, 횟대식해 등 다양하다. 연체류로는 고둥, 낙지, 대합, 건오징어, 문어, 오징어, 한치식해 등이 있다. 어란 및 아가미로 만드는 명태아가미식해, 명태창자식해, 명란식해 등도 있다.

식해 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함경도 가자미·도루묵식해, 경상도 포항·영덕의 추석날 해 먹는 대구횟대밥식해, 마른고기 식해인 진주의 명태(북어)와 조기식해 역시 별미다.

◆마른고기 식해

경상도 마른고기 식해는 진주를 중심으로 합천, 산청, 함안, 의령, 창녕 등지의 반가 음식에 자주 등장하던 반찬이었다. '북어식해'는 북어에 엿기름과 곡물을 넣어 삭혀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으로 조미해 붉고 맵게 만든 저장음식이다. '이사할 때 악귀를 쫓는다'는 유래가 있어 경남 창녕지방에서는 예부터 이사할 때 빠지지 않고 만들어 즐겨 먹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향토음식이었다. 북어 2마리, 무 300g, 파·마늘 각 50g, 엿기름가루 50g, 좁쌀 1컵, 고춧가루 1/2컵, 생강 1쪽, 소금 1/2컵을 준비한 후 북어는 두드려 소금물에 절여 하룻밤 정도 재우고 무는 씻어 소금물에 절이며 파·마늘·생강은 곱게 다진다. 좁쌀은 깨끗이 씻어 일어 밥을 되직하게 짓는다. 절인 무와 북어는 물기를 짠 후 큼직하게 자른다. 넓은 그릇에 무와 고춧가루를 함께 버무려 붉은색이 나면 조밥, 파, 마늘, 생강, 소금, 북어 등을 넣어 고루 섞으면서 엿기름물을 넣고 버무려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아 3∼4일간 따뜻한 곳에서 삭히면 맛있는 북어식해가 된다.

'조기식해'는 간조기 10마리, 쌀 1.5㎏, 엿기름 200g, 고춧가루 3/4컵, 마늘 50g, 생강 30g, 석이버섯 100g을 준비한 후 쌀로 밥을 지어 고아 엿기름과 고춧가루를 섞어 둔 후, 간조기는 배를 갈라 내장을 빼고 뼈를 발라낸 다음 소금으로 간을 한 후 채반에 널어 꾸덕꾸덕 말린다. 마늘·생강은 다지고 석이버섯은 밥을 엿기름과 고춧가루를 섞은 것과 버무려 간조기의 배에 차곡차곡 넣어 짚으로 묶은 후, 준비해 둔 양념을 고명으로 얹어 항아리에 담아 그늘진 곳에서 2∼3일 정도 삭히면 경상도 마른고기 일종인 맛있는 조기식해가 된다. 북어식해나 조기식해를 모두 '진주식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음식은 아마 진주감영에서 비롯된 음식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일반 가정에서는 아직도 진주식해를 해 먹는 집이 있겠지만 대중음식점에서 맛볼 수 없는 것이기에 아쉽다.

대담=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원장·이춘호 음식전문기자
정리·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