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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멈춰 섰던 각종 행사가 밀물처럼 몰려온다. 친선모임은 물론이고 그간 미루어졌던 결혼식들로 주말이 분주하다. 결혼식에 하객으로 갈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 주말, 막히는 길을 뚫고 돌고 돌아 겨우 차를 댄다. 인파를 가르며 혼주에게 인사하고 봉투를 내민다. 뷔페가 차려진 식당에서 먹는 밥은 칠성시장 노점에서 먹는 잔치국수보다 부실한 것 같고, 혹은 별반 필요도 없는 기념품을 받는다. 왔던 길을 되짚어 귀가할 때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혼인을 축하하는 마음을 전했다기보다 귀찮은 숙제를 해치웠다는 느낌이 앞설 뿐이다. 이게 나만의 생각일까.
우리는 결혼식을 너무 번잡하게 또는 무성의하게 치른다. 시내 모처에 위치한 예식장에 수백 명의 손님들이 한날한시에 모여서, 전통과 거리가 멀고 유래도 모호한 예식을 치른다. 30분이 채 되지 않는 예식에 참석한 사람 중 혼주와 가까운 친인척 그리고 신랑, 신부의 친구들을 뺀 대부분은 호출받은 방관자에 불과하고 자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대개 그 행사는 주말의 대낮에 잡히기 마련이어서 하객은 휴일의 휴식을 희생해야 한다. 재력가 또는 고위층 인사의 예식은 화려한 장소에서 거창하게 치러지는데 이때는 준비한 봉투가 밥값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또 다른 불편함이 있다.
'가정의례준칙'은 혼례(婚禮)에 관하여 "하객 초청과 피로연은 친인척을 중심으로 간소하게 한다"고 정하고 있고 모법인 '가정의례법'은 "공무원 등 사회지도층 인사는 이를 솔선하여 모범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같은 통과의례이지만 상례(喪禮)는 대개 삼일장으로 치러지니, 문상객들은 자기 편한 시간을 골라 조문할 수 있다. 상주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쓸쓸한 상가라면 오래 머물면서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그런지 결혼식이 주는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청첩(請牒)과 달리 부고(訃告) 범위를 제한하지 않는 것은 그런 연유 때문이리라.
전통혼례는 도시화, 산업화에 따라 양가의 어머니가 촛불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는 예식장 행사로 변질되었고, 다소 모호한 이 시대의 결혼식은 경조사에 연대하는 우리의 공동체 정신에 힘입어 성행했지만 이제는 그 수명이 다한 것 같다. 보여주기식의 번다한 예식이 아니라 두 가정만의 성스럽고 참한 혼례가 점점 늘어나는 것은 이미 기존의 결혼식이 변곡점에 다가섰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즈음 결혼식 참석 여부에 관한 나만의 기준을 밝히면 이렇다. "예식 후 기념사진까지 찍어야 할 관계"가 아니면 축의금만으로 갈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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