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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대구대 교수 |
9월8일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북한의 국내외적 긴급 현안들을 발표했다. 김 위원장의 연설이 갖는 의미는 남한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한 것과 같다. 김 위원장은 핵무력 정책의 법제화 이유를 설명하고 경제발전을 위한 사업 중 하나로 대운하 건설 구상도 언급했다.
북한의 대운하 건설 구상은 핵무력 정책에 가려져 남한과 국제사회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으나, 북한이 향후 원대한 이상과 목표로 제시한 만큼 국가사업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한 탈북민에 의하면 북한에서 대운하 건설 구상은 김일성 주석이 6·25전쟁 직후인 1953년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들에게 관련 내용을 검토해 보라는 지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20여 년의 연구 끝에 서해의 대동강과 동해의 용흥강을 연결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기계장비와 측량기술 등이 부족한 북한으로서는 낭림산맥을 관통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1970년대 후반 북한경제가 급속하게 기울면서 대운하 건설 구상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동서대운하가 건설될 경우 의미는 적지 않다. 군사적으로는 북한 해군의 동·서해 통합 운영이 가능해지고,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물류가 이전보다 훨씬 수월해진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통과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중국 관광객 유치에도 매우 유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의 대운하 건설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먼저, 약 1천㎞에 이르는 대운하 건설에 들어갈 원자재를 원만하게 공급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북한은 2021년부터 5년 동안 평양시에 5만호 건설과 대규모 온실농장 건설을 추진 중이므로 이들을 한꺼번에 추진하기에는 버거울 수 있다. 둘째, 재정부담 능력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시정연설에서 밝힌 5개년 계획의 목표가 2025년도에는 2020년 기준 국내총생산 1.4배, 인민소비품 생산은 1.3배 등을 강조했다. 이는 5개년계획 기간 동안 매년 7%의 경제성장률을 보여야 가능한 수치라는 게 통일연구원의 분석이다. 2000년 이후 5% 이상 성장한 사례가 없었던 북한으로서는 무리한 계획일 수 있다.
반면 긍정적인 측면은 대운하 건설에 요구되는 인력은 비교적 충분하다는 점이다. 북한의 군대나 청년돌격대 투입으로 가능하다. 1979년 남포-평양 고속도로 건설에 청년돌격대를 투입해 성공한 경험도 갖고 있다. 그래서 도로명이 '청년영웅도로'이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북한의 독자적인 대운하 건설은 남한이나 중국 등의 외부 지원이 없다면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담대한 구상'을 발표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진행에 따라 북한 경제 분야 육성과 인프라 구축, 해외투자 유치를 구체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북한의 김여정 부부장은 '허망한 꿈'이라며 상대하지 않겠다고 응답해 왔다. 그러나 과거 남북관계를 돌이켜보면 경색국면에서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어 남북이 대화의 자리에 앉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교류가 단절된 현재 남북한이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모멘텀을 발굴해야 한다.
북한의 대운하 건설 구상은 남북한의 대화를 위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과 접점이 있을 수도 있다. 앞으로 정부와 언론에서 북한의 대운하 건설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김정수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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