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메일] 미디어 환경과 법

  • 윤두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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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6   |  발행일 2022-09-26 제25면   |  수정 2022-09-26 06:55

[여의도 메일] 미디어 환경과 법
윤두현 국회의원 (국민의힘)

1995년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는 최고 시청률 64.5%를 기록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당시 모래시계는 '귀가시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모래시계가 방영되는 날이면 TV 본방 사수를 위해 다들 귀가를 서둘러 서울 시내 교통량이 21% 감소하기도 하였다. 최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수리남'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모래시계' 방영 당시와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국민들은 언제, 어디에서든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원하는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생활에서 접하는 미디어 환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미디어의 중심축 또한 방송, 라디오, 신문과 같은 전통적 미디어 또는 레거시 미디어에서 뉴 미디어로 이동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환경을 뒷받침하는 법과 제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현재의 방송법은 1980년 언론통폐합을 위해 만들어진 언론기본법의 틀을 이어오고 있다. 오죽하면 방송법을 '5공화국법'으로 부르기도 할까. 21세기 제도의 근간이 무려 40년 전에 만들어진 법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공영방송, 준공영방송, 민영방송의 구분이 희미하고,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에 대해 동일하거나 유사한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공영방송에서는 공영이 사라지고, 민영방송에서는 자율이 사라졌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2000년부터 시행되어 온 방송사업자에 대한 재승인·재허가 제도 또한 마찬가지다. 방송의 존폐와도 직결되는 재승인·재허가 제도를 두고 실효성과 모호하고 과도한 조건 부과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TV조선 점수조작 의혹이다. 최근 감사원은 방송통신위원회가 TV조선에 대한 재승인 과정에서 점수를 조작한 정황을 발견하고 이를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하였다.

문제는 이 한 건의 재승인의 조작이 아니라 언제든 특정 집단의 개입과 조작으로 언론에 고삐를 물릴 수 있다는 의혹이 생겼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언론, 보도에 대한 국가 제도의 운영에 있어 불거진 의혹만으로도 언론과 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심각하게 훼손된다.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국민이 미디어를 접하고 활용하는 환경이 변한 것처럼, 법과 제도 또한 자연스럽게 바뀐 현상에 맞게 개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미디어 산업도 지속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9월13일 제74회 미국의 에미상 시상식에서 '오징어 게임'이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포함해 6관왕의 쾌거를 이루었다. 높아진 우리나라 콘텐츠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번 수상이 먼 훗날 돌이켜 보았을 때 우리나라 콘텐츠 부흥의 출발점으로 기억되어야 하는데, 과거 한때의 영광스러웠던 순간으로 기억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우리 미디어 산업의 부흥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풍부한 자원, 창의적인 인재를 바탕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미디어 제도 전반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이유다. 지금 세계 문화계에 'K-콘텐츠'라는 파도는 어느 때보다 높고 힘차게 일고 있다. 하지만 제도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이 파도는 한여름 바닷가의 물거품처럼 금방 사그라지고 말 것이다.
윤두현 국회의원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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