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아버지 체포된 후 행방불명…할아버지·삼촌도 간첩 누명쓰고 징역"

  • 이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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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9  |  수정 2022-09-29 07:14  |  발행일 2022-09-29 제9면
신윤식씨, 과거사 진실규명 신청

집안 전체가 연좌제 족쇄 걸려

"가족들의 억울함 풀기로 나서"

6·25때 아버지 체포된 후 행방불명…할아버지·삼촌도 간첩 누명쓰고 징역
28일 오후 대구 중구의 한 카페에서 신윤식씨가 진실 규명 신청서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제 나이가 80이 넘었습니다. 죽기 전에 가족들의 억울함을 풀고 싶어 진실 규명 신청서를 제출하게 됐습니다."

28일 대구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윤식(80·대구 중구 삼덕동)씨는 그간 겪은 슬픈 가정사를 덤덤히 꺼냈다. 1942년 태어난 신씨는 대구 중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던 중 집안에 변이 닥쳤다. 6·25전쟁 중인 1950년 7월쯤 동구 동촌 소재 자택에 있던 아버지 신현택씨가 보도 연맹원이라는 이유로 연행됐던 것.

신씨는 "당시 국민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아버지가 갑작스레 연행되어 자세한 정황을 알지 못했다. 경찰로 추정되는 3명이 갑자기 집에 들이닥쳐 아버지를 체포해 간 후 아버지는 행방불명이 되셨다"며 "이후 먼 친척에게 듣기로는 아버지가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것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 어머니, 삼촌까지 모두 나서 아버지를 찾고자 했으나 아직까지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신씨의 할아버지인 신석균씨는 아들 신현택씨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중구 동성로에 '경북지역피학살자유족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1960년쯤 신씨의 고모부가 월북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할아버지마저 북한 간첩으로 국내에 침투했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에 붙잡혔고, 결국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삼촌 신현재씨 역시 할아버지와 비슷한 이유로 잡혀가 재판을 받고 2년 이상의 징역을 살았다.

신씨는 "할아버지의 시신을 겨우 수습하고, 삼촌도 징역살이를 하신 후 3~4개월 뒤 돌아가셨다. 일련의 과정들로 우리 집안 전체가 연좌제 족쇄에 걸리며 힘든 나날들이 이어졌다"며 "일본인이셨던 어머니는 연좌제에 걸려 고향인 일본에도 가지 못한 채 타국에서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사촌은 육군사관학교에 응시했으나 신원조회에서 떨어져 이를 비관하다 사망했고, 나 역시 해외유학을 포기하고 우리 집안의 문제가 대물림 될까 무서워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두려움 속에 살던 신씨는 지난 4월 가족들의 억울함을 풀고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 규명 신청서를 냈다.

그는 "평생 집안일로 불안 속에 살았다. 하지만 정확한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에 진실 규명 신청서를 제출했다"며 "다 지나간 일이라지만 죽기 전에 우리 집안의 억울함을 풀고, 당시 가족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는지 소상히 밝히고 싶다"라고 했다.

글·사진=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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