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불고기 이야기(1) 肉과 火의 향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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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14 08:27  |  수정 2022-10-14 08:29  |  발행일 2022-10-14 제33면
수렵 생활한 북방서 유래한 고기구이 요리법
고구려, 저장 음식으로 간 한 뒤 훈제해 구워
고려 멱적·설하멱적·설리적, 불고기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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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수도 개경에서는 멱적(覓炙)이 설하멱적(雪下覓炙)· 설리적(雪裏炙)· 설야적(雪夜炙) 등의 이름으로 되살아나서 이것이 지금의 불고기로 이어지고 있다. 불고기란 단어가 제시된 첫 사전은 1950년 한글학회의 큰 사전(제3권)이었다. 사진은 대구 별미인 연탄석쇠돼지불고기.

'불고기'라는 단어는 옛 문헌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불(火)'과 '고기(肉)'는 한글 창제 초기와 그 뒤 여러 문헌에서 볼 수 있으나 불과 고기의 복합어인 불고기는 중세어, 근대어의 어느 문헌에서도 볼 수가 없다. 100여 년 전 한국에 온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펠릭스 클레르 리델에 의해 1880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간행된 한불사전, 1911년 선교사 게일에 의해 출판된 한영사전은 물론 1938년에 간행된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에서도 불고기란 단어는 찾아볼 수가 없다. 불고기란 단어가 제시된 첫 사전은 1950년 한글학회의 큰 사전(제3권)이었다.

김기림 시인이 1947년 잡지 학풍(2권 5호)에 발표한 '새말의 이모저모'란 글에 불고기의 전파력에 대한 글이 나온다. '물론 간혹 그중에는 대중의 필요와 입맛에 맞는 것이 있어서 국어 속에 채용될 적도 있으나 그것은 실로 어쩌다 있는 일이다. 초밥과 같이 비교적 잘 되어 보이는 순수주의자의 새말조차가 얼른 남을 성싶지도 않다. 거기에 대하여 불고기라는 말이 한번 평양에서 올라오자 얼마나 삽시간에 널리 퍼지고 말았는가'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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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시장 내 연탄석쇠돼지불고기의 양대 산맥인 함남과 단골식당 골목 전경.

북한의 3대 불고기. 평양의 순안 불고기·강원도의 송도원 불고기·황해도의 사리원 불고기를 꼽는다. 평양의 별미인 순안 불고기는 남한의 일반 불고기만큼 자극적인 맛은 아니다. 소 등심을 칼등으로 두드려 부드럽게 만든 후 파와 마늘은 다지고, 배는 갈아서 즙을 짜 간장에 다진 파, 마늘, 설탕, 식초, 배즙, 참기름, 후춧가루, 깨소금을 넣어 양념장을 만든다. 소 등심을 얇게 저미어 양념장에 30분간 재운 다음 육수를 자박하게 붓는다. 재운 고기는 석쇠에 펴놓고 숯불에 구워 간장과 식초를 섞은 초간장에 찍어 먹는다.

송도원 불고기는 검은 돌판에 구워 먹고 사리원 불고기는 사리원 특산물인 포도주와 과일을 이용한 양념으로 재운 후 먹는 양념 불고기다. 달콤한 양념이 밴 불고기와 심심한 국물까지 함께 먹는 사리원 불고기는 구이보다는 전골에 가까운 느낌이다.

어쩌면 짐승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불고기는 평안도 지방의 방언으로 시작되어 평양에 올라오자 평양의 인기 있는 음식이 되었고, 이 불고기가 광복과 함께 평안도 피란민들에 의해 서울 장안에 진출한 것이다.

실제 1947년까지도 서울에는 불고기라는 음식명을 쓰지 않았다. 다만 남대문 시장 같은 데서 평안도 피란민들이 하는 허술한 음식점에서나 볼 수 있었을 뿐이다. 결국 1950년 큰 사전에 불고기라는 단어가 올라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불고기'라는 단어가 1940년대에 등장한다고 해서 불에 고기를 구워 먹는 습속이 1900년 중반부터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선사시대의 원시인들은 짐승을 잡으면 날고기를 그냥 뜯어 먹다가, 점차 고기를 말려서 오래 두고 먹는 법을 알게 되었고 인류가 불을 이용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요리의 역사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고기를 꼬챙이에 꿰어 모닥불에 직접 굽다가, 돌판 위에 올려놓고 굽게 되었고, 석쇠에 올려놓고 굽는 과정을 거쳐 번철이나 불판을 이용하는 오늘날의 요리법이 나오게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의 고기를 구워 먹는 요리법은 오랜 세월 동안 수렵과 목축으로 생활해 오던 대륙의 북방민족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 3호분을 보면 고기를 굽는 사람들을 묘사한 그림이 있는데, 중앙의 푸줏간에는 4개의 거대한 쇠스랑 고리에 노루, 돼지 등 짐승고기가 통째로 매달려 있다. 고구려는 사냥기술이 발달해 상대적으로 육식을 많이 했고, 특히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구려인은 사냥한 짐승고기를 된장, 간장 같은 저장음식으로 간을 한 뒤 훈제해 구워 먹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한국식 불고기 문화로 이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는 멱적(覓炙)이 설하멱적(雪下覓炙)·설리적(雪裏炙)·설야적(雪夜炙) 등의 이름으로 되살아나서 이것이 지금의 불고기로 이어지고 있다.

조선 중기 문신이며 시인인 이응희(1579~1651)가 쓴 옥담시집(玉潭詩集) 만물편(萬物篇) 음식류에 '적(炙)'이라는 불고기에 대한 시가 있다. 조선 숙종 때 문신이자 실학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에 '우육(牛肉)을 썰어서 편(片)을 만들고 이것을 칼등으로 두들겨 연하게 편 것을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서 유염(油鹽·전통간장)으로 조미해 기름이 충분히 스며들게 한 다음 숯불에 굽는다'라고 불고기 굽는 법이 나온다. 거기서 설야멱적 이야기가 등장한다.

대담=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원장·이춘호 음식전문기자
정리·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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