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위험한 정치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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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17 06:39  |  수정 2022-10-17 06:41  |  발행일 2022-10-17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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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 논설위원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가 연일 나오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전례 없는 도발을 감행했다. 대놓고 9·19 군사합의를 위반했다. 대한민국호가 어디로 갈 것인지, 두려움이 엄습한다. 경제, 외교, 국방 등 모든 게 불확실하다. 무언가 터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대한민국을 옥죄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은 정치다. '진영'과 '프레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견고해졌다. '초당적'이라는 단어도 사라졌다. 당장 북한의 도발에 대해 서로를 비난하기 바쁘다. 북한이 무려 560발의 포를 쏟아부었는데도 위기의식이 전혀 없다. 국민만 불안해하는 것 같다. 북한의 도발 수준을 보면 유승민 전 의원의 지적처럼 '안보 비상사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술 더 떠 "정부 여당이 민생보다는 내부 결집용 안보 포퓰리즘에 집중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친일국방론'까지 제기했다. 집권세력을 친일 프레임에 가두고,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태도다. 안타깝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이 민족이 아니라 국가라는 것을 망각한 듯하다. 민족에 방점을 두다 보니 감성적 언어를 사용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국가보다 진영에 집착한다. 진영 논리에 따르다 보니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없다. 지도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일으킨 '역사 논쟁'도 아쉽다. 정 의원은 최근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표의 친일국방론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인데, '식민사관'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 의원이 조금 자세하게 얘기했다면 불필요한 역사 논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안에서 썩어 문드러진 것'은 '조선 전체'가 아니라 '조선 왕실과 고위직 양반'이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분연히 일어선 의인들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게 실수였다. 그래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한일합방이 전쟁을 통해 이뤄진 것은 아니다. 민주당도 친일 공세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스스로 한번 물어볼 필요도 있다. 정권을 잡았을 때 전시 상황이 도래한다면 일본의 도움을 받을 것인지를.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존재하는 어떤 것도 외부의 것에 의해서 망하는 것은 없다. 스스로 망하는 길을 가다가 외부가 자신을 망하게 하도록 허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정치가 그런 꼴 아닌가.

서애 류성룡이 쓴 '징비록'에 새삼 눈길이 간다. 징비록은 선조 25년(1592)부터 31년(1598)까지 7년 동안에 걸친 임진왜란에 대하여 적은 책이다. 임진왜란의 조짐은 한참 전에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 전인 1586년 일본의 국왕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서신을 가지고 온 야스히로는 조선의 예조판서가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후추를 뿌렸고, 사람들이 그것을 줍느라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야스히로는 "너희 나라는 망할 것이다. 이미 기강이 무너졌으니 어찌 망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정치가 혼란스러우면 나라의 기강이 무너진다. 국권이 훼손된다. 지금 대한민국을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정치다.조진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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