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울진에 녹음이 온다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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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20 06:35  |  수정 2022-10-20 06:40  |  발행일 2022-10-20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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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경북부장

경북도가 경북도청 정문과 천년숲 사이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지난달부터 매 주말 '차 없는 거리'로 운영하고 있다. 방문객이 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목적이지만 도청을 시민이 걷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 도로는 도청이 이전한 2016년 당시에는 보행자 우선도로였으나, 차량 진입 요구가 커지면서 2019년부터 차량 통행이 허용됐다. 편리성에 밀려 차량에 내줬던 도로가 주말이나마 시민 품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반가운 일이다.

걷기 좋은 도시하면 경북 포항을 빼놓을 수 없다. 포항시가 추진하는 '도시 숲 조성사업'은 시민 삶의 질을 높여주는 쾌적한 휴식공간 제공은 물론 미세먼지 저감, 도심 경관 개선 효과도 크다. 도시 숲은 한마디로 시민이 산책할 수 있는 걷기 좋은 공간이다. 시는 최근 핫플레이스인 포항 철길숲,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 등 시민이 걸으면서 휴식할 수 있는 녹색공간을 늘려나가고 있다. 건강과 힐링을 위한 걷기 좋은 도심 속 공원의 숫자와 수준이 도시 품격과 경쟁력을 결정하는 척도가 되는 시대 흐름에서 포항의 도시 숲 조성은 주목할 만하다.

많은 학자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직립보행에서 찾는다. 직립보행을 통해 인간은 뇌가 발달했으며 이는 문명 발달의 원동력이 됐다. 이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도 걷기를 한두 주만이라도 해본 이들은 장점을 안다. 많은 이들이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꼽는다. 끝없이 걷기만 해 힘들기 그지없다는데 왜 다들 떠나려 하는가. 숨은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태를 반영해 지자체들이 걷기 좋은 길을 만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경북지역 지자체들도 앞다퉈 강변, 역사 유적지 등에 걷기 명소를 만들고 있다. 문경시는 선유동천 나들길, 상주시는 경천섬 강 바람길, 예천군은 회룡포·삼강 걷기 길, 김천시는 부항댐 둘레길 등을 조성했다. 멋진 걷는 길 조성이 주민 건강을 챙기면서 관광객 유입 효과까지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걷기, 좀 더 우아하게 말하면 산책은 최근 유행만은 아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유명한 철학자 칸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을, 같은 속도로 걸었다. 산책을 고집한 이유에 대해 칸트는 "걸으면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나 자신과의 대화시간이고 책으로도 얻지 못하는 것을 가득 채워주며 버릴 것은 버리게 해 준다"고 말했다. 자연을 사랑한 음악가 베토벤도 자연을 온전히 즐기는 방법으로 걷기를 꼽았다. 그 유명한 '전원교향곡'도 산책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하지만 일반인이 이같이 거창한 것까지 바랄 순 없는 일. 이런 가운데 걷기로 내 건강을 챙기면서 남을 돕는 사업이 있어 눈길을 끈다. 올 초 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본 울진의 산림을 복구하는 데 '걷기 운동'을 통해 일조할 수 있다. 경북도가 전국 지자체 최초로 실시하는 '걸음 기부 캠페인'이다.

걸음 기부는 걷는 걸음 수가 기부되는 방식이다. 경북종합자원봉사센터가 개발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뚜벅이' 앱을 휴대전화에 설치, 실행하면 자동으로 걸음 수가 측정되고 기부된다. 울진 산림 복구에는 10억 걸음이 달성되면 사회공헌 활동기업이 이를 지원, 3만 그루의 나무를 심을 수 있다. 걷기를 통해 건강을 챙기면서 우리의 산도 되살릴 수 있다. 나의 작은 발걸음이 잿더미가 된 산을 다시 녹음이 우거진 숲으로 만든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초록으로 물드는 울진 숲을 그려본다.
김수영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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