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문명의 계단을 내려가는 증오의 말 '유감'

  • 조진범
  • |
  • 입력 2022-11-21 06:43  |  수정 2022-11-21 06:51  |  발행일 2022-11-21 제27면

2022111901000606000025601
조진범 논설위원

"집단의 일부일 때 개인은 문명의 계단에서 몇 단계를 내려간다. 혼자 있으면 교양 있는 개인일지 모르지만 집단으로 있으면 즉흥성, 폭력성, 맹렬함 그리고 열정과 영웅주의 같은 원초적 존재의 특성을 갖게 된다." 프랑스 사상가인 구스타브 르 봉의 말이다. 1895년 출간한 '군중 심리학'이라는 책을 통해 지적했다. 놀랍다. 무려 127년의 세월을 넘어 대한민국의 현실에 적용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진영 논리가 판을 치면서 폭력적인 언어 정치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상대를 증오하는 언어가 예사로 구사된다. 심지어 종교인까지 가세했다. 대한성공회 소속 신부가 대통령 전용기 추락을 염원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라는 탄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얼마 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에서 나온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의 말도 귀를 의심케 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책임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법적인 책임을 어떻게 든 회피하고자 발악하고 있다. 나 혼자 좀 살아보고자 추태를 부리고 있다"고 소리쳤다. "공감, 부끄러움, 수치심, 이런 감정들은 인간이 갖고 태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 이런 감정들은 어떻게 생기느냐. 부모로부터 배운다. 그동안 보고 배우지 못하신 것 같아서 굉장히 안타깝다"고도 했다. 명백한 인격 모독이다. 군중심리학에 따르면 강 의원은 집단 논리에 매몰돼 문명의 계단을 전혀 밟지 못한 셈이다. 누가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강 의원은 여당 의원들의 사과 요구에 "예결위 진행에 차질이 빚어진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의 발언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태도이다. 민주당 인사들의 '발언 논란'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를 향해 "쇼윈도 영부인"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쏘아붙였다. 격한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내고 있다.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 중인 에이미 추아는 '정치적 부족주의-집단 본능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가'라는 책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집단은 부족주의로 후퇴하기 마련이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고 더 폐쇄적, 방어적, 징벌적이 되며 더욱더 '우리 대 저들'의 관점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대한민국의 진영 대결을 정확하게 분석한 문장이다. '우리 대 저들'의 관점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시각이다. 제거 대상으로 볼 뿐이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정권퇴진 운동에 나서는 것도 윤석열 정부의 5년을 도저히 참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당분간 진영 논리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염치(廉恥)를 모르는 정치인들이 태반이다. 정치는 말로 한다. 말의 바탕은 생각이다. 집단 논리에 빠지면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으면 염치도 모른다.

강선우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영남일보 칼럼 필진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한 칼럼에서 불경 법구경의 '그 마음의 악이 생겨 도리어 제 몸을 부수는 것은 마치 저 쇠에서 녹이 생겨 그 몸을 파먹는 일과도 같네'라는 구절을 인용한 적이 있다. 남을 미워하면 결국 자기 스스로가 미움으로 얼룩져 피해를 받게 된다는 말인데, 강 의원에게 해당된다. 강 의원뿐 아니라 증오의 말을 내뱉는 정치인들은 집단의 일부가 아닌 개인으로 자신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조진범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