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데자뷔, 이우환 미술관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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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1 06:42  |  수정 2022-12-01 06:48  |  발행일 2022-12-01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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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경북부장

역시 이우환이다. 지난 4월 프랑스 아를에 이우환의 이름을 건 미술관이 개관했다는 뉴스를 봤다. 아를이 어딘가. 그 유명한 고흐가 화가로서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그래서 아직도 그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그런 미술의 도시에 이우환 개인미술관이 건립됐다는 것은 우리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대구는 이우환과 관련, 아픈 상처가 있다. 대구시가 2000년대 말부터 추진했던 이우환미술관 건립이 무산된 일이다. 이우환미술관 건립을 둘러싸고 대구시와 시민단체, 문화예술인 간에 갈등이 빚어졌다. 이에 시는 2014년 이우환미술관 건립을 백지화했다. 이우환미술관은 대구미술의 브랜드 가치 제고, 관광산업 발전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필요하나 건립 당위성, 절차상 논란이 만만치 않았다. 이우환이 대구와 별다른 연고가 없는 데다 공론화를 거치지 않고 작가와 몇몇 미술계 관계자로부터 시작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 지역미술인의 반대가 컸고 여론에 부담을 느낀 이우환이 포기를 선언함에 따라 미술관 건립은 수포로 돌아갔다. 일관성 없이 추진된 이 사업으로 대구시는 국제적 망신거리가 됐다. 또 미술관 설계비 등으로 수십억원의 혈세를 낭비했다. 세계적 명성을 가진 이우환의 작품이 가득한 미술관이 한국근현대미술의 기반을 닦은 대구에 있었더라면 하는 상상을 하면 아쉬움이 적지 않다.

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예술 접근성이 떨어졌던 경북에도 미술관 건립 소식이 이어져 반갑다. 그중 예천군의 박서보미술관 건립이 핫이슈다. 세계미술시장에서 한국단색화가 주목받으면서 각광받는 이가 박서보다. 몇 년 전 한 미술기관이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작가'를 묻는 조사에서 1위 김환기를 이어 박서보가 2위를 차지했다. 국내외에서 박서보 위상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그의 고향이 바로 예천이고 그와 그의 작품을 기리는 공간이 박서보미술관이다.

최근 박서보미술관 건립사업이 행안부 지방재정중앙투자심사를 통과해 추진에 탄력을 받게 됐다. 지난해 11월 문체부 공립미술관 건립타당성 사전평가에서 적정하다는 평가를 받은 데 이어 지방재정중앙투자심사에서도 최종적으로 사업 적정성을 통보받아 미술관 건립을 본격 추진할 여건이 마련됐다.

하지만 복병을 만났다. 예천군의회가 국제설계공모관리 용역비 삭감으로 제동을 걸었다. 김학동 군수와 박서보 화백은 2년 전 미술관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할 당시 박서보미술관을 스페인 구겐하임미술관 같은 세계 명소로 만들겠다며 미술관 자체를 예술작품처럼 건립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구겐하임미술관은 전시작의 수준도 뛰어나지만 독특하고 예술적인 건물로 더 큰 사랑을 받는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군수와 작가의 계획이 용역비 삭감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자칫 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 일과 관련해 군과 의회의 협치, 소통 부재를 꼬집는 목소리가 크다. 군의회는 각종 공모사업 추진에 관련된 정보를 의회가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군의회가 배제된 것에 대한 섭섭함으로 읽힌다. 군립미술관이라는 큰 사안에 관해 의회와 집행부 간 다양한 소통창구를 마련하고 사전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부족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군도 나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술관 건립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는 의회와의 소통, 협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우환미술관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김수영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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