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피플] 명불허전 vs 도유허명…카타르서 운명 갈린 월드컵 무림 고수들

  • 조진범
  • |
  • 입력 2022-12-07 07:42  |  수정 2022-12-07 08:03  |  발행일 2022-12-07 제18면
국내 프로축구에 관심이 없어도 월드컵은 본다는 사람이 많다. 왜? 재미있으니까! 전쟁 같은 축구에 열광한다. 맞다. 축구는 전쟁이다. 총, 대포, 미사일, 전투기가 동원되지 않는 '세계대전'이다. 월드컵에 참가하는 나라의 국민 애국심은 끓어오른다. 한 경기, 한 경기 승부가 끝날 때마다 환호와 비탄이 교차한다. '언더도그의 반란'이 일어나면 그야말로 난리다. 카타르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를 꺾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승리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월드컵의 또 다른 묘미는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스타들의 활약은 축구팬들을 흥분시킨다. '스타 열전'이 따로 없다. 쟁쟁한 스타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을 보면 중국의 고전 무협소설 '수호지'를 연상케 한다. 축구계의 스타들이 자존심과 명예를 걸고 싸우는 모습이 양산박의 108명 영웅호걸의 투쟁을 떠올리게 한다. 부침(浮沈)도 있다. 이름에 걸맞은 활약을 펼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실력 발휘를 못 하고 고개를 숙이는 선수도 있다. 반전이 가미된 '각본 없는 드라마'가 월드컵이다.

잘했어!
'韓축구 지존'이 된 손흥민

폭풍질주·킬패스로 12년 만의 16강 견인
해외언론 "고국에서 축구를 초월한 선수"


◆명불허전(名不虛傳)

'역시'라는 감탄사가 나오는 고수들의 활약은 축구팬들을 행복하게 한다. 일반의 경지를 뛰어넘은 절세신공(絶世神攻)을 보는 재미가 대단하다. 한국 축구를 16강에 올린 주장 손흥민(30·토트넘)이 빠질 수 없다. H조 조별예선 포르투갈과의 최종전 막판에 보여준 손흥민의 '폭풍 질주'와 '킬 패스'는 고수의 품격을 느끼게 했다. 무협지에 나오는 '축지법'을 실제로 보는 듯했다. 손흥민의 '스프린트 찬스'로 한국은 역전 드라마를 썼다. 얼굴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안면 마스크를 쓴 손흥민이 마스크 사이의 공간으로 달려드는 황희찬을 본 것도 어마어마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다. 영국 BBC 방송은 "한국 대표팀의 주장 손흥민은 고국에서 축구를 초월한 선수"라고 소개했다. 우리나라 축구팬들에게 손흥민의 존재감을 잘 표현한 문장이다. 손흥민을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한 사람이 조광래 대구FC 사장이다. 조 사장은 자신이 축구대표팀 사령탑이던 2010년 당시 18세이던 손흥민을 국가대표로 호출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손흥민은 무공을 갈고닦아 이제 한국 축구의 '지존'이 됐다. 그동안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107경기에 출전해 35골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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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하는 원로' 케인


골보다 후배 지원…3개 어시스트 1위 질주
16강전선 득점 포문 열며 '킬러 본능' 과시

손흥민의 토트넘 단짝인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29)은 20대의 나이에 벌써 축구종가의 '원로'로 평가받는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몰려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세 차례나 득점왕에 올랐던 케인은 카타르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직접 슛을 쏘기보다 후배들의 득점을 돕는 데 신경을 썼다. 3개의 도움으로 현재까지 도움 랭킹 1위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대신 '문파'의 명예를 위해 희생하는 원로의 모습이다. 무공이 약해진 것도 아니다. 아프리카의 돌풍 세네갈과의 16강전에선 직접 슛을 쏴 골을 기록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득점왕(6골)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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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 제친 음바페

축지법 질주로 5득점 골폭풍
만 24세 이전 최다골 신기록


'전설'을 뛰어넘은 고수도 등장했다. 프랑스의 간판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24·파리 생제르망)와 '축구의 신'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35·파리 생제르망)이다. 음바페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5골을 넣으며 득점 단독 1위에 나섰다. 폴란드와의 16강전에선 2골 1도움을 기록했다. 프랑스는 음바페의 활약에 힘입어 폴란드를 3-1로 꺾고, 대회 2연패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 음바페는 '축구황제' 펠레(브라질)의 기록을 넘어섰다. 오는 20일 24번째 생일을 맞는 음바페는 만 24세가 되기 전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9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초고수의 탄생이다. 음바페는 첫 월드컵이던 2018년 러시아 대회에서 4골을 넣었다. 음바페의 강점도 손흥민과 마찬가지로 스피드다. 폴란드전에서 한 차례 찍힌 음바페의 순간 최고 속도는 시속 35㎞였다. '축지법의 절대자' 우사인 볼트와 맞먹는다. 우사인 볼트의 100m 기록은 9.58초로 시속으로 환산하면 36㎞ 정도이다. 물론 우사인 볼트의 기록은 100m 내내 36㎞의 속도로 달린 것이니 단순 비교는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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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댄스' 메시

월드컵 통산 9득점째
아르헨 최다골 도전

메시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의 기록을 제쳤다. 메시는 호주와의 16강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작렬시키며 월드컵 통산 9득점째를 올렸다. 마라도나의 기록은 8골이다. 메시는 공중볼을 제외하면 공격의 모든 역할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선수로 평가받는다. '축구의 신'이라는 별명이 그냥 붙은 게 아니다. 카타르대회는 메시에게 마지막 월드컵이다. '라스트 댄스'에 나선 메시의 전설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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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도 외면한 호날두


이번엔 등날두·한반두 오명

◆도유허명(徒有虛名)

'텅 빈 이름'뿐인 선수들도 있다.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무소속)도 그렇다. 카타르 월드컵 직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방출된 호날두는 조별예선까지 전혀 이름값을 못했다. 포르투갈 팬들까지 외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포르투갈의 스포츠 매체 '아볼라'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호날두가 계속 선발로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0%가 "아니요"라고 답했다. 호날두는 '사파의 고수'라는 인상을 준다. 특히 '날강두'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한국 팬들에게 '인성 파탄자' 취급을 받는다. 2019년 당시 이탈리아 세리에 리그 유벤투스 소속이었던 호날두는 방한 경기에서 '노쇼'를 했다. '45분 출전 약속'을 어기면서 날강두라는 오명을 얻었다. 날강두는 돈을 받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사용하는 말이 됐다. 카타르 월드컵에선 '등날두' '한반두'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한국과 포르투갈전에서 김영권은 호날두의 등을 맞고 떨어진 공을 넣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한반두는 호날두가 한반도에 도움을 줬다는 의미이다. 한국 팬들은 호날두의 주민등록증까지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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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최다골 뮐러, 2개 대회 연속 무득점


'전차군단' 독일의 토마스 뮐러(33·바이에른 뮌헨)도 이름값을 못했다. 뮐러는 현역 선수 중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다. 2010 남아공과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각각 5골씩 총 10골(역대 공동 8위)을 기록했다. 그게 끝이었다. 2018 러시아대회에서 무득점에 그친 뮐러는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골맛을 못 봤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뮐러에게 적용된다. 뮐러는 독일의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뒤 대표팀 은퇴를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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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황금세대…러시아월드컵 3위 벨기에 조예선 탈락

팀 전체의 명성에 금이 간 나라도 있다. 벨기에가 장본인이다. '황금세대'로 구성된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2위 벨기에는 예선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씁쓸히 카타르 월드컵 무대에서 사라졌다. 사실상 '멸문지화'를 당한 셈이다. 2015년 FIFA 랭킹 1위, 2018 러시아 월드컵 3위의 주역인 벨기에 황금세대의 몰락은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조진범 논설위원 jj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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