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편 가르기 사회' 과이불개, 가스라이팅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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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26 06:38  |  수정 2022-12-26 06:46  |  발행일 2022-12-26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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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 논설위원

한 해가 저물어간다. 해마다 이맘때면 교수신문에서 선정하는 사자성어가 주목을 받는다. 대한민국 사회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올해는 '과이불개(過而不改)'가 꼽혔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이불개 다음으로 '욕개미창(欲蓋彌彰ㆍ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 '누란지위(累卵之危ㆍ여러 알을 쌓아놓은 듯한 위태로움)' '문과수비(文過遂非ㆍ과오를 그럴듯하게 꾸며대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한다)' '군맹무상(群盲撫象ㆍ눈먼 사람들이 코끼리를 더듬으며 말하다)'이 뒤를 이었다. 모두 부정적이다.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정권교체가 이뤄져 새 정부가 들어선 첫해인데도, 교수들이 진단한 한국 사회는 잿빛이다. 안타깝다.

대한민국의 어두운 자화상은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이어졌다. 문 정부의 첫해는 희망찼다. '파사현정(破邪顯正·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내다)'이 2017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 이듬해부터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임중도원(任重道遠·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공명지조(共命之鳥·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묘서동처(猫鼠同處·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가 차례로 선택을 받았다. 출발은 야단스러웠지만, 끝은 보잘것없이 흐지부지된 셈이다. 문 정부는 결국 심판을 받았다.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

2019년 공명지조부터 교수신문의 사자성어를 보면 일관된 흐름이 있다. 진영 논리, 편 가르기이다. 어느 순간 대한민국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조국 사태'가 최대 변곡점이 아닐까 싶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궤멸의 대상으로 본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 대화가 어렵다. 자칫 상대를 인정하다간 난리가 난다.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극단의 악순환이다. 극단의 논리는 필연적으로 증오와 혐오를 유발한다. 김건희 여사를 향해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했던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이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이 앞장서서 혐오 정치를 부추기고 있다. 극단의 논리로 무장한 선동가들도 설친다. 유시민, 김어준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선동가들은 '가스라이팅'에 능하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작해 지배하는 정신적 학대를 뜻하는 단어인데, 요즘 정치인이 허위 정보와 협박을 통해 불특정 추종 세력을 선동하는 행위로 의미가 확대됐다. 가스라이팅이 미국의 사전 출판사인 메리엄 웹스터의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것을 보면 '편 가르기'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증오와 혐오 비즈니스도 횡횡하고 있다. 유튜브 정치 채널이 그렇다. 자극적인 선동 방송으로 돈을 끌어모은다. 실제 지난해 유튜브 정치 채널 14곳이 슈퍼챗 등으로 억대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사실 과이불개도 편 가르기의 연장선에 있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행위에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진영 논리에 갇혀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 형국이다. 욕개미창이나 문과수비, 군맹무상도 크게 보면 편 가르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영 논리와 편 가르기를 극복해야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내년부터 교수신문의 사자성어에 희망이 담겼으면 한다.조진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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