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최강한파 속 대구 노숙인들, 따뜻한 실내 찾아 삼만리

  • 이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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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26 17:57  |  수정 2023-01-26 17:57  |  발행일 2023-01-27
[르포] 최강한파 속 대구 노숙인들, 따뜻한 실내 찾아 삼만리
26일 오전 동대구역에서 한파를 피해 대합실로 들어온 노숙인이 또 다른 노숙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남영 기자

"아이고, 말도 하지 마. 이번 주 내내 너무 추웠어. 박스 깔고 담요 덮고 하루하루 버티는 거지 뭐."
대구지역 거리 노숙인들에게도 '최강 한파'가 찾아왔다. 강추위에도 '자유로운 생활'을 선호하는 노숙인과 한파 속에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관계기관은 이번 겨울을 어떻게 지나고 있을까.

26일 오전 11시30분쯤 찾아간 동대구역. 역사 내부에서는 추위를 피하고자 실내로 들어온 노숙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최근 대구에 불어닥친 한파는 그 누구보다 노숙인들이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대구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25일 경북 북부내륙의 최저기온이 -20~-15℃를 기록했으며, 대구와 경북 남부는 -15~-10℃로 매우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체감온도는 그보다 더 떨어졌다.

강추위 속 노숙인들은 '먹고 씻고 자는' 기본적인 생활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40년째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는 A(여·75)씨는 "겨울 동안 바깥에서 잘 때는 종이상자를 깔고 두꺼운 담요를 덮고 잠을 청하지만 요 며칠은 너무 추웠다"며 "동대구역은 새벽이 되면 노숙인들이 머무를 수 없지만, 이틀 전에는 너무 추워서 역사 직원에게 하루만 역사 안에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해 겨우 실내에 들어와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추워서 제대로 먹거나 씻지도 못하고 있다"고 손사레를 쳤다.

노숙인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한파를 이겨내고 있었다. 영남일보 취재진이 만난 노숙인 대다수는 패딩, 장갑, 모자 등 방한용품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었으며 겨울을 나기 위한 두꺼운 담요, 종이 상자 등을 챙겨놓기도 했다. 한 노숙인은 취재진에게 '추워서 옷을 다섯 겹으로 껴 입었다'고 말하며 한파를 피할 수 있는 자신만의 '비법'을 전수해주기도 했다.

동대구역에서 만난 노숙인 B(69)씨는 "동대구터미널은 공항버스 때문에 항상 열려있다. 이 때문에 저녁에는 터미널로 이동해 잠을 청하거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며 "반월당역, 대구역 등 지하철역에도 자주 간다. 서울역에도 한 번 가봤는데, 역사 안에 있기 어렵고 대구와 기온 차이가 많이 나 너무 추워서 당분간은 대구에 있으려고 한다"고 했다.

26일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가 발표한 '2022년 대구지역 노숙인 실태조사 및 정책제안서'에 따르면 대구지역 노숙인은 평균 182명으로, 이중 거리 노숙인이 98명으로 가장 많았다. 거리 노숙인 중 기초생활 수급자와 정신질환·정신증 노숙인, 조사기피자는 설문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고려하면 더 많은 거리 노숙인이 있을 것으로 파악된다.

대구시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보호시설 등에 계신 분들은 지원이 비교적 수월하지만 거리 노숙인은 시설 입소 뿐 아니라 대화도 거부하실 때가 있어서 난감할 때가 있다"며 "이번 같은 한파가 찾아오면 방한용품, 응급 잠자리 등을 제공하고 순찰을 나가는 등의 방법으로 노숙인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한파가 시작되면 센터에서는 노숙한 지 얼마 안 되거나 바깥에 계신 분들을 찾아내는 데 집중한다. 대부분은 노숙 생활을 오래 하셔서 자신들만의 겨울나기 방법이 있지만 노숙한 지 얼마 안 된 분들은 자신들이 무엇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며 "겨울철이면 방한용품, 식사를 제공하는 등 기본적인 노숙인 지원 방법은 정립돼있기 때문에 이런 분들을 빠르게 찾아내 지원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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