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좌우 날개'를 함부로 말하지 말라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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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06 06:44  |  수정 2023-02-06 06:43  |  발행일 2023-02-06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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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 편집국 부국장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 본문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문장이다. 헌법을 공부하지 않더라도 많은 국민이 알고 있는 헌법 제1조 제1항이다. 뜻도 쉽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게 민주(民主)이고, 함께 화합한다는 의미가 공화(共和)다. 정치제도로 보면 두 사람 이상이 공동 화합해 정무를 시행하는 일이 공화이다. 과연 그런가. 민주에는 이견이 없다.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의 권력이 위임된다. 그래서 헌법 제1조 제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문제는 공화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면 공화는 헌법에만 나오는 레토릭에 불과하다. 화합을 추구하는 공화 정신은 사라졌다. 화합의 다른 표현은 포용이다. 자신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수용하고 공동의 비전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게 공화인데, 현실은 서로 죽일 듯이 으르렁대고 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정치 성향과 다른 집단을 배척한다. 포용은 언감생심이다. 공화 정신의 실종은 생활에까지 미치고 있다. 올 초 발표된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는 꽤 충격적이다. '정치적인 성향이 다른 사람과 식사 또는 술자리가 불편하다'는 응답이 40.7%에 달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 본인 또는 자녀의 결혼'에 대해서도 '불편하다'가 43.6%를 기록했다. 진영 정치가 고착화될수록 '생활의 분단'은 심화될 것이다. 이념 대결의 부작용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심각한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브라질에서 벌어진 대선 불복 폭동 사태가 대표적이다. 브라질 대선에서 진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의회와 대법원, 대통령궁에 들어가서 폭동을 일으켰다. 불과 2년 전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모두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수용하지 않은 태도에서 비롯된 일이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통합과 균형을 강조한 말인데, 정작 상대 진영에만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은 채 상대방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집단적으로 사고하면서 좌우 날개를 거론하는 것은 가당찮다. 집단사고는 도덕적 환상에 빠지게 한다. 집단의 이념을 도덕 기준으로 착각해 개인은 판단하지 않게 된다. 상대 진영은 자연스럽게 악마화된다. 동조현상도 집단사고의 폐해다. 집단에 속해 있으면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어렵게 된다. 오히려 극단의 언어로 이념의 종이 되길 자처한다. 결국 진영 내의 다양성은 사라지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를 양분하고 있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이 그렇다. 상대 진영의 주장을 헛소리 취급한다. 당내에서 나오는 다른 목소리도 '내부 총질'로 규정하고 있다. 집단사고를 지지자들에게 주입하며 대한민국을 갈라놓고 있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날갯짓의 본질은 의지와 방향성에 달려 있다고 했다. 좌우 날개는 상대 진영을 무너뜨리기 위한 선동 문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집단사고의 측면에서 보면 맞는 말이다. 좌우 날개는 집단이 아닌 개인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집단사고에 빠지지 않고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한다. 생활의 불편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상대방을 수용하지 않는 태도에서 나온 좌우 날개나 통합은 허구에 불과하다. 진영에 휩쓸리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대한민국이 공동의 비전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다.조진범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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