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대형마트 평일 휴무가 소환한 10여 년의 기억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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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22 06:44  |  수정 2023-02-22 06:44  |  발행일 2023-02-22 제26면
평일로 바뀐 대형마트 휴무
시민 편리와 맞바꾼 쉬는날
다수 위해 누군가는 희생
그 가치의 경중은 누가
시민이 행동으로 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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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호 인터넷뉴스부장

대구지역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 지난 12일부터 매달 둘째, 넷째 주 월요일로 바뀌었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2012년부터 매달 의무적으로 월 2회 문을 닫아야 했다. 대형마트 인근 전통시장, 소상공인과의 상생 효과 극대화를 위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움직이는 '일요일'을 쉬는 날로 정했다가 10여 년 만에 평일로 바꾼 것이다.

그런 덕분에 이번 달 둘째 주 일요일이던 지난 12일 대구지역 한 외국계 대형마트도 문을 열었다. "휴무일 변경 첫날이라 여유롭게 쇼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찾은 그곳은 이미 사람으로 넘쳐났다. 평소 주말처럼 계산대 대기 줄이 길었고, 그 길이가 줄어드는 시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트 직원은 "평소 일요일보다는 적다. 하지만 손님이 이만큼 올 줄 몰라 직원들도 평소보다 적게 나온 탓에 계산 대기 줄이나 대기시간이 평소 일요일만큼 길다"고 말했다. 일요일 영업재개에 맞춰 인력배치를 한 마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린 것이다.

그렇게 11년 만에 둘째 주 일요일 쇼핑을 마치고 나오면서 같은 세월 동안 아내가 겪은 아픔(?)이 떠올랐다.

지금은 주 5일 근무 등으로 기자들도 격주 일요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이젠 익숙해진 탓에 그 여유가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2012년쯤에는 매주 일요일에 출근했고, 설날과 추석 명절을 제외하면 공휴일에도 쉬지 못했다.

지금은 중학교 3학년, 1학년이 된 두 딸이 어린이집을 다닐 나이에 아내는 늘 공휴일마다 아빠 없이 아이들과 놀러 다녀야 했다. 아이들의 투정에 안 나갈 수는 없고, 나가면 아이들이 아빠를 찾아서 그리고 왜 우리는 아빠랑 같이 못 노느냐고 말해서 힘들었다고 아내는 하소연했다.

그런데 이제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이들의 가족이 이런 아픔을 겪게 됐다. 공휴일에도 쉬지 못하는 그들이 2번의 일요일 휴무마저 없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요일에 쉬겠지만, 그날 다른 가족은 그를 두고 학교나 직장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대형마트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그들은 지난 12일부터 가족과 단란한 휴일을 함께 보내지 못하게 됐다. 10여 년 동안 적어도 한 달에 2번 정도는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이 만들어내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이들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는 쪽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표를 계산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좀 더 편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인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시민, 같은 직장인의 입장은 달라도 되지 않을까. 10여 년 동안 매달 두 번의 일요일에 대형마트가 문을 닫았다고 해서 크게 불편했는가. 또 문을 열었다고 내 삶이 엄청 편리해질까. 그 편리함의 크기가 60곳가량의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직장인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빼앗아도 될 정도일까. 같은 처지의 우리들이 스스로 좀 더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하고, 거기에 동참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그들이 다시 두 번의 일요일 휴무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노인호 인터넷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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