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길] 자기만의 방

  • 이윤경 새마을문고대구광역시지부 이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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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3  |  수정 2023-03-03 09:24  |  발행일 2023-03-03 제14면

[책 속의 길] 자기만의 방
이윤경<새마을문고대구광역시지부 이사·시인>

중학교 때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서 처음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시작되는 긴 시를 외우며 그녀의 생애가 궁금했다.

그렇게 다시 만난 건 '댈러웨이 부인'에서였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댈러웨이 부인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지금의 나와 클라란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꿈과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가졌던 과거의 나를 오가면서 내가 나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울프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다시 만난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말을 걸어왔다. 여자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경제적 자립을 가져야 한다고 100년 전에 글을 썼던, 여러 장르의 책을 냈던 그녀가 말한다.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버지니아 울프를 문학사에서 페미니즘과 모더니즘의 선구자라고 한다. 나는 그런 거대 담론이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으로 자기 삶을 결정하고 주도할 수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간절히 원했던 섬세하고 뛰어난 한 작가로서 경외한다.

그녀가 살았던 1920년대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2020년대. 100년의 시간 동안 여성의 지위와 사회적 참여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고 더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여유롭게 글을 쓰는 작가는 흔하지 않다. 나 또한 밥벌이를 위해 밖에서 일을 하고, 집에서 밥을 하고 가족들을 챙기고, 겨우 남는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울프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이 어떤 공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여전히 꿈꿀 수 있고 조금씩 나아가고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많은 일들이 자기만의 방을 가지는 거라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진실되게 쓰고 용감하게 행동하는 자유로운 한 사람을 꿈꾸는 것. 그런 삶을 살아내는 것. 그런 삶을 글로 옮겨 쓰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만의 방을 꿈꾸며 다시 쓴다.
이윤경<새마을문고대구광역시지부 이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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