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급발진 미스터리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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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13  |  수정 2023-03-13 06:42  |  발행일 2023-03-13 제27면

지난해 12월 강원도 강릉에서 선뜻 이해하기 힘든 교통사고가 났다. 천천히 가던 SUV 승용차가 갑자기 시속 100㎞ 넘게 급가속해 달리다가 수로에 빠진 것. 이 사고로 운전자인 60대 할머니는 중상을 입었고, 함께 탑승한 10대 손자는 숨졌다. 이상한 점은 SUV 승용차가 수로에 빠지기 전에 모닝 차량을 들이받고도 600m나 더 달렸던 것. 혹시 운전자 잘못일까. 충돌 사고를 내고도 계속 가속페달을 밟은 것일까. 도주 차량이 아니라면 그럴 리가 없다. 실수였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 할머니는 8년간이나 손자를 차에 태워 등하교시켰다. 또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에는 "이게 왜 안 돼"라는 할머니의 당황한 음성이 녹음돼 있다. 차를 세워야 하는데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는다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여러 정황상 자동차 급발진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동차 결함을 밝혀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입증 책임이 제조사가 아닌 운전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불합리한 제도 탓에 지난 5년간 신고된 200여 건의 급발진 의심 사고 중 차체 결함으로 인정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자동차도 기계일진대 유독 급발진 관련 고장은 없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도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국민청원을 통해 억울함을 알리지 않았다면 조용히 묻혔을 것이다. 유족의 호소에 동의하는 국민 여론이 들끓자 정부와 국회가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급발진 사고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함께 제조사가 입증 책임을 지도록 하는 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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