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칼럼] 보이스피싱

  • 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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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9 06:58  |  수정 2023-03-30 17:47  |  발행일 2023-03-29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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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나는 무관한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씩 최면 걸린 듯 하라는 대로 응하고 말았다. 나는 상식도 없었다.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사후 처리할 게 너무 많았다. 내 불찰이었지만 이게 개인의 문제인가 싶었다.

지난 2일 근무(아동안전지킴이) 첫날이었다. 아동안전지킴이는 초등학교 주변을 순찰하며 아동안전 도모활동을 수행하는 경찰 지구대 단위 노인일자리이다. 주5일 하루 3시간 하는 일이다. 이날 오후 1시 이전 소속 지구대에 가서 출석체크하고 2인1조로 담당 초등학교로 향했다. 하교길 횡단보도에서 교통정리하고 부근 공원으로 갔다. 오후 2시쯤이었다. 한 조가 된, 몇 년 동안 해온 분과 얘기를 나누며 쉬던 중 문자가 왔다. 다른 휴대폰으로 온 '집사람'이었다. 집사람도 시니어클럽 일을 하고 있었다. 그날은 오후 3시쯤 일이 시작되는 오후반이었다.

"휴대폰이 고장 나서 보험처리 해야 되는데 은행 계좌번호 보내달라"는 문자였다. 집사람 아닌 줄 몰랐다. 업무를 익히는 첫날이라 바로 수첩을 보고 보냈다.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휴대폰 속 사진을 찾아 보냈다. 가만히 있으라 해서 가만히 있었다. 주민등록증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해서 찍어 보냈다. 좀 있다가 통장 비번도 보냈다. 생각없이 자동모드로 작동됐다. 2시간쯤 지나 근무가 끝난 오후 4시쯤 집에 왔을 때도 자꾸 가만 있으라고 하길래 그제서야 "도대체 누구냐?"며 "집사람 바꿔라"고 하니까 서둘러 지우며 철수해 나갔다. 이후 대구은행 고객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15만원씩 3차례 출금됐다는 통지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통장은 내가 보낸 계좌가 아닌 집사람이 관리하는 내 이름의 다른 통장이었다. 내 통장에 잔금이 별로 없어서 그 통장의 돈을 출금했다. 내 주민증으로 공인인증서를 만들고 내 명의를 도용해 3대의 휴대폰을 개통시켜 놓은 것이었다. 도용폰으로 스팸문자를 발송했음도 해지할 때 알고 물어야 했다.)

"이렇게 당하다니!" 난감했다. 은행거래정지부터 요청했다. 휴대폰도 교체했다. 그날 밤 퇴근한 집사람은 내 이름의 타 은행 통장도 있다고 했다. 112에 보이스피싱을 신고했다. 지구대에서 안내받고 명의도용방지 등을 신청했다. 다음 날 금요일, 휴대폰 속 메모장에 여러 비번들이 들어있음이 떠올랐다. 사이버수사대에 갔다. 우리 내외는 토·일에도 가슴 졸였다. 신문사 후배를 통해 전 사이버수사대장과 통화하면서 "그 선에서 끝나지 않았다면 대출피해까지 당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 위안이 됐다. 말로 하기 어려웠던지 서울서 며느리가 월요일 아침 내려와 뒷수습을 했다. 대구은행 여행원도 사고 다음 날부터 연일 친절하게 도왔다. 계좌도 바꾸고, 휴대폰에 메모된 아파트현관 비번까지 바꾸고, 연금계좌 변경, 카드 해지, 휴면계좌 정리…, 사고 후 3주 지나 거래정지를 복원했다.

어떤 자료를 보니 기관사칭형, 대출빙자형, 사칭형-메신저피싱 등 보이스피싱 유형 중 내가 당한 '사칭형·메신저피싱'이 근년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린다고 했다. 2021년 경우 기관사칭 31%, 대출빙자 10%, 메신저피싱은 59%였다. 메신저 피해액은 2021년 991억원으로 전년보다 166% 증가했다. 정부도 사회적 문제인 보이스피싱 예방 및 피싱범검거 등 대책 마련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각자 유의할 일이다. 60대 이상은 '모르는 전화나 문자는 무조건 바로 끊으십시오'이다. 나하고 무관하지 않다. 대구수성경찰서 사이버수사대에 갔을 때 사무실 벽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주민등록증 사진 절대로 찍지말라.'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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