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chatGPT와 단독기사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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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9 06:56  |  수정 2023-03-29 06:55  |  발행일 2023-03-29 제26면
AI가 만들어낸 표절 소설 봇물
온라인 출판사의 극약처방
창작물 위해 작품 접수 중단
네이버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규모보다 가치에 무게 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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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호 인터넷뉴스부장

2006년 10월부터 공상과학소설(SF)을 접수, 온라인으로 발행해 온 월간 SF 잡지인 '클락스월드(Clarkesworld)'는 지난달 단편 접수를 중단했다. 신인작가 등이 자신의 창작물을 보내 돈을 받고 온라인 출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출판사가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챗GPT와 같은 AI가 만든 표절 작품' 때문이다. AI가 소설까지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평소 한 달 10건가량이던 표절 의심 작품 수는 지난 1월 100건, 2월 500건으로 폭증했다. 표절이 의심되는 작품을 걸러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고, 저절로 개선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회사 측은 '접수 중단'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린 것이다.

클락스월드가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은 아마도 신인 작가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자신만의 창작물이 표절작품 따위에 묻히고, 그 탓에 작가들의 창작 의욕이 꺾이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지켜내는 것이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AI가 손쉽게 만들어내는 결과물 사이에서는 작가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손해는 감수하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뉴스서비스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네이버 등 대형 포털은 '단독'으로 표현되는 '독창적인 기사'를 어떻게 대우하고 있을까.

지난 22일 오후 4시17분 영남일보 홈페이지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조만간 국민 앞에 설 것"이라는 제목의 단독기사가 실렸고, '네이버'에도 함께 올라갔다. 1년가량 별다른 소식이 없었던 박 전 대통령 뉴스여서인지 기사 조회 수도 폭발적이었다.

2시간가량 뒤 연합뉴스를 시작으로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YTN 등 16개 매체가, 다음 날인 23일에는 SBS, 동아일보 등 14개 언론사가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나 혼자만 쓴다'는 비아냥을 받는 '단독기사'가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이 뒤이어 보도를 해야 할 정도의 기사였다. 그리고 이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 대부분은 '영남일보 보도'를 인용하는 형태로 '단독기사'에 대한 예의를 표시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취재가 힘들어서 인용하지 않고서는 보도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네이버'는 달랐다. 이렇게 많은 매체가 인용보도를 할 정도의 '단독기사'였지만, 관련 기사 메인 자리는 대형통신사 기사로 채웠다. 오리지널을 두고 인용한 기사에게 더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러자 회사 홈페이지 방문자와 기사 조회 수 증가 폭도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네이버 탓에 재주는 영남일보가 부리고, 재미는 다른 회사가 본 꼴이 된 것이다.

네이버의 기준도 있겠지만, 그것이 개별 기사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회사 규모나 조회 수 등 다른 요인이어서는 안 된다. 수많은 매체가 인용할 정도의 '단독기사'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오래 배치해야 더 많은 기자가 그런 기사를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릴 것이고, '어뷰징 기사'를 쓰는 사람도, 쓰라고 하는 사람도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클락스월드는 신인들이 작품을 내는 데 더 많은 장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에 접수를 중단했다. 네이버를 포함해 뉴스서비스를 하는 포털사이트들이 어떤 결정을 할까.노인호 인터넷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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