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특권이냐, 분권이냐

  • 허석윤
  • |
  • 입력 2023-04-10 06:58  |  수정 2023-04-10 06:58  |  발행일 2023-04-10 제27면

2023040901000247500010741
허석윤 논설위원

챗GPT에게 물어봤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 없애야 할 사회적 특권은 무엇인가? 대답은 이렇다. "△지역 간 차별=한국은 지역 간 차별이 크게 나타나는 나라다. 특히 수도권과 그 외 지역 간의 격차가 큰데, 이러한 지역 간 차별을 해소하지 않으면 전국적인 발전이 어려울 것이다. △권력 기관의 특권=한국의 권력 기관들은 여전히 과도한 특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잘못된 판단이나 비리를 저지르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고, 권력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과 재벌의 특권=한국은 대기업과 재벌이 지배하는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특정한 산업 분야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대외적으로도 지나치게 우월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외에도 챗GPT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생긴 세대 간 격차 등을 특권의 관점에서 나열했다. 양이 길어서 나머지는 잘랐다. 원론적이지만 틀린 말은 없었다. 우리나라 권력 기관과 재벌이 누리는 과도한 특권 문제는 제대로 된 지적이다. 더구나 한국이 없애야 할 특권 가운데 가장 먼저 수도권을 언급한 게 놀랍다. 통상 개인이나 집단에 한정되는 특권 개념을 지역으로까지 확장하다니.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감안할 만큼 똑똑한 게다.

내친김에 수도권이 가진 특권의 배경과 현황, 문제점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예상대로 누구나 수긍할 만한 모범답안이 나왔다. 게다가 묻지도 않은 대안까지 덧붙였다. 친절도 하다. 아쉬운 점도 있다. 답변 수준이 원론적이고 피상적이다. 질문이 두루뭉술한 탓일 수도. 어쨌건 수박 겉핥기식 답변 중에서도 생각해 볼 부분이 있었다. 무엇보다 수도권 특권이 조선시대부터 굳어진 현상이란 것. 모르는 이는 거의 없겠지만 상기해 보는 차원이다. 조선 개국 때부터 한양에는 출세를 노린 전국의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왕이 사는 도읍이었으니 당연했다. 주요 통로는 양인들까지 응시 가능한 과거제도였다. 문과 급제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경쟁률이 2천대 1이었다. 보통 20~30년간 시험 준비에 매달려야 했다. 하지만 한양 입성에 성공하기만 하면 인생역전이 이뤄졌다. 신분 세습도 가능했기에 한양의 양반 권력은 세력을 넓히면서 뿌리내렸다. 이처럼 '인서울'의 역사가 600년도 더 됐으니 한국인의 DNA에 각인될 법하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라는 속담이 왜 생겼겠나.

'인서울'은 산업화를 거치면서 더욱 가속화됐다. 돈과 일자리가 부족한 지방민의 엑소더스는 일상이 됐다. 그 결과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국민의 절반 이상이 모여 산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전 분야를 독점하는 특권지대가 됐다. 이 같은 '서울 공화국' 체제가 앞으로 개선되기는 할까. 국민 의식 깊숙이 서울에 대한 동경심이 뿌리박혀 있는 한 그럴 리가 없다. 되레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국내의 70%를 차지하는 수도권 경제가 규제완화 등 약발로 몸집을 계속 불리지 않는가.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다. 수도권 특권을 강화하거나 분권으로 지방을 살리거나. 갈 길은 정해져 있다. 세계 최악의 출산율과 인구 유출로 지방 곳곳이 소멸 위기다. 이미 내부 식민지화된 지방이 몰락하면 수도권인들 건재할까. 분권과 균형발전을 지방에 대한 시혜로 접근해선 안 된다. 대한민국 공멸을 막는 대안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선택이 아닌 필수다.
허석윤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