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서도 ‘모세의 기적‘을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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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03 06:55  |  수정 2023-05-03 07:28  |  발행일 2023-05-03 제26면
응급환자 받지 못하는 응급실
구급차 뺑뺑이 돌다 10대 사망
의료진, 의료전달체계 개선 필요
근본적 해결위해 시민 동참해야
응급실에서도 모세의 기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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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호 인터넷뉴스부장

지난 3월 건물에서 떨어져 다친 10대 여학생이 구급차에서 숨지는 일이 있었다. 추락 후 의식이 있는 상태로 경찰에 발견됐고, 이후 119구급대를 통해 지역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의 응급실을 찾았지만,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했고, 결국 숨졌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10대 여학생 A양이 숨지기 약 1시간 전 이송된 중소병원 의료진은 119구급대에 "뇌출혈이 의심되니 대형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이 정보는 대구소방안전본부 119상황실이나 다른 병원에 공유되지 않았다. 이런 정보가 없었던 응급실 의료진은 별다른 검사나 진료 없이 A양을 다른 병원으로 보냈다. 만약 A양이 다녀간 병원 중 한 곳에서만이라도 CT나 MRI검사가 이뤄졌다면 관련 증상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고, 뺑뺑이 돌다 숨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안타까운 사건 이후 대구지역 대학병원 등은 119구급대가 이송병원을 정하면 그 결정을 최대한 따르기로 합의했지만, 그렇다고 해결될 문제였으면 애초부터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환자가 넘쳐나서 응급치료를 할 수 없어 뺑뺑이를 돌아야 했던 상황인데 갑자기 지정만 한다고 가득 차 있던 응급실 내 응급환자가 줄어드는 건 아니지 않는가. 사건 이후 보건당국 실태점검과 경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수사를 떠나 의료진이 잘못한 부분이 없다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의료진만을 탓해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의료진과 보건당국의 개선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아니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변해야 하는 게 있다. 응급실을 이용하는 시민 의식이다.

2021년 응급의료통계연보에 따르면 응급실 이용 환자 절반 이상이 경증환자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의 10명 중 7명 이상(71.7%)은 자동차를 타거나 걸어서 응급실을 찾는다. 절반 이상(50.5%)은 응급실이 아니어도 되는 환자인 탓에 10명 중 7명 이상(74.3%)이 호전돼 응급실에서 귀가했다.

환자 개인 입장에서는 자신의 목숨이니 응급하다 느낄 수 있겠지만, 스스로 병원을 찾아갈 정도고 그런 탓에 70% 이상 다시 귀가할 정도라면,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상급종합병원이 아니라 지역 내 종합병원을 먼저 찾는 게 본인은 물론 정말 응급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좋다. 응급하지 않는 환자 탓에 실제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에게 갈 의료진의 손발이 묶인다면 결과적으로 그 경증환자는 응급환자를 죽게 만드는 데 일조한 게 될 수도 있다.

큰길에서 119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면 2023년을 사는 우리는 최대한 길을 열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기적을 함께 만드는 것에 뿌듯해한다. 바다가 갈라지는 모습을 떠올려 '모세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기적을 뚫고 구급차가 도착해야 할 병원 응급실에서는 그런 배려가 아직 없는 것 같다. 모세의 기적을 통해 도착한 응급실이 꽉 막혀 있다면, 그건 기적을 가장한 절망 예고편에 불과하다. 이제 구급차를 비켜주는 것처럼 응급실에 진짜 응급한 환자를 위한 모세의 기적을 조금씩 현실로 만들어 나가보자. 도로 위 모세의 기적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당연해진 것처럼 말이다.노인호 인터넷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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