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끝은 또 다른 시작 (2) 업사이클…대구·부산色 입은 폐원단, 명품이 되다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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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26 07:18  |  수정 2023-05-26 07:21  |  발행일 2023-05-26 제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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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감천문화마을의 한 가게에서 만날 수 있는 파라솔 재활용 가방들.

버려지거나 잉여 자원을 재활용, 디자인 등의 가치를 더해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업사이클링이 최근 '힙'하게 다시 태어나고 있다. 업사이클링 제품을 넘어 강한 개성을 담고 있는 패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탄생한 브랜드 '프라이탁'처럼 우리나라에도 각 도시의 특성과 정체성을 담은 업사이클 브랜드 혹은 제품들이 있다. 부산의 폐파라솔을 재활용한 가방이나 대구의 대표 업사이클 브랜드 '더나누기'처럼 말이다. 저마다의 매력을 가진 '새활용' 브랜드와 제품들을 만나봤다.

◆부산 '부라이탁'을 아시나요

부산 감천문화마을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벽에 알록달록한 가방들이 걸린 가게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가방의 디자인이 상당히 독특하다. 부산에서 많이 마시는 소주 브랜드를 비롯해 유명 아이스크림과 사탕 브랜드의 마크, 자동차 회사와 편의점·카드회사의 로고가 가방 곳곳에 찍혀 있었다. 선명한 한글로 '해운대구'라고 프린트돼 있는 가방도 있었다. 가방의 디자인은 제각각으로 같은 디자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게 앞을 지나던 외국인들은 가방이 신기한 듯 그 앞에서 연신 기념촬영을 하기 바빴다. 가방들 위로 'made from recycled beach umbrellas'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한 여성 관광객은 "가방 디자인이 재미있고 미술 작품 같기도 해서 관심을 끌었다"고 했다.

요즘 부산을 다녀온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바로 '부라이탁'. 프라이탁도 아니고 부라이탁이라고? '부산'과 '프라이탁'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재미있는 이 말은 부산에서 살 수 있는, 부산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특별한 물건을 일컫는다. 그것은 '폐파라솔'로 만든 가방이다.


부산
해운대 등서 나온 파라솔·병뚜껑
현대미술 작품 같은 가방 재탄생
희소성 큰 디자인 외국인도 환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양도시인 부산에는 해운대를 비롯해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해수욕장이 있다. 부산 바닷가에는 한여름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는 파라솔이 많이 설치되는데, 이 파라솔은 오래되고 낡으면 창고에 쌓여있다 소각 등을 통해 폐기돼 왔다. 그런 버려진 파라솔을 재활용해 만든 것이 이른바 '부라이탁'으로 불리는 가방인 것이다.

에코에코협동조합 화덕헌 대표는 "우연히 창고에 쌓여 있는 폐파라솔을 만져보게 됐는데, 소재가 괜찮았다. 면을 만드는 목화 농사에 많은 양의 농업용수가 투입되는데, 파라솔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농업용수의 양이 얼마나 많겠나. 낡은 파라솔이 그냥 버려지기에는 아까운 것 같고, 이왕이면 한 번 더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캔버스 천 같은 소재를 재활용해 가방을 만들어 봤다"며 "협동조합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폐파라솔 가방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가방 제작에는 감천문화마을의 일부 어르신들도 참여하고 있다. 가방을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소재는 재활용 제품이다. 가방의 원단은 폐파라솔을, 부속품은 페트병의 플라스틱 뚜껑 등을 재활용해 만든 것이다. 가방 버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콜라 뚜껑과 사이다 뚜껑이 섞인 듯 오묘한 색을 띠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한 사탕 브랜드가 프린트돼 있는 가방이다. 오래전 해운대 파라솔에 등장했던 브랜드라서 희소성이 있고 디자인도 예쁘기 때문이라고.

지금은 귀여운 '별칭'까지 생긴 가방이지만, 처음에는 우여곡절도 있었다고 한다. 화 대표는 "초창기에는 가방이 잘 팔리지 않았다. 한 달에 10개도 팔기 힘든 시절이 있었다. 가방에 '해운대구' 등의 문구가 버젓이 적혀 있으니 당시엔 사람들이 '남사스럽다'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저걸 어떻게 들고 다니냐'는 것이었다.(웃음) 그런 반응도 이해가 됐는데, 우리나라가 무척 가난하던 시절이 있었지 않나. 그 시절을 살아온 분들은 남이 쓰던 물건이나 재활용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며 "지금은 과거에 비해 판매량이 꽤 늘어난 편이다. 특히 젊은 층과 외국인들이 가방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최근 몇 년 새 문화가 급변한 것을 느낀다. 가방의 소재(폐파라솔)와 제작 방식은 그대로인데, 그동안 세상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업사이클링 제품에 대한 세상의 시선과 인식 변화가 있었다는 의미였다.

화 대표는 "우리나라의 한 해수욕장에서 나오는 폐파라솔로 가방을 만든다고 해서 환경에 막대한 기여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이런 제품을 통해 사람들이 한 번 더 재활용의 가치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소개
대구경북디자인진흥원 관계자들이 '더나누기'의 업사이클링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대구 대표 업사이클 브랜드 '더나누기'

박완서 작가가 남긴 자전적 소설에는 좋은 문장이 넘쳐나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바느질로 가족을 부양한 작가의 어머니와 관련된 일화다. "삯바느질로 들어오는 옷감들은 시골서 입던, 무명에다 물감을 들인 것과는 댈 것도 아니게 부드럽고 고운 본견이었다. 엄마는 조각보에다 마름질하고 남은 예쁜 헝겊들을 가득 싸놓고 있었다. 내가 심심해서 그런 걸 가지고 조각보 모으는 흉내라도 내려고 하면 엄마는 질색을 하고 빼앗았다."(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중에서) 작가의 어머니는 어린 딸이 행여나 바느질을 배워 자신처럼 고생을 할까 봐 걱정을 했던 것 아닐까.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그 시절에는 자투리 헝겊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조각보에 고이 모아놨으니 말이다. 남은 옷감을 싼 조각보 역시 예로부터 조상들이 작은 헝겊 조각을 모아서 만든 것이었다.

과거 자투리 헝겊을 모아 조각보 등을 만들었던 것처럼 현대에는 자투리 원단으로 가방 등을 만들어 '새활용'의 가치가 이어지고 있다.


대구
섬유공장서 나온 고급 자투리 천
토트백·파우치·슬리퍼 등 변신
'레드닷어워드' 디자인부문 수상



대구 동구 신천동의 대구경북디자인진흥원 건물 입구를 들어서면 계단 위로 가방과 파우치 등이 전시돼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자가 찾아간 지난 19일에는 카키색의 백팩과 보스턴백, 토트백 등으로 구성된 '밀리터리 라인'이 전시돼 있었다. 당장 출퇴근이나 여행에 사용해도 될 것 같은 세련된 디자인의 가방들은 튼튼한 군용 텐트 원단을 활용해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이었다. 가방 브랜드 이름은 '더나누기(thenanugi)'. '더나누기'는 대구의 대표적인 업사이클 브랜드 중 하나다.

현재 대구경북디자인진흥원에는 '더나누기'의 상설전시장과 판매장이 마련돼 있다. 판매장에서는 다양한 디자인의 새활용 제품을 선보이고 있었다. 무겁지 않고 실용적인 가방을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좋아할 만한 제품들이었다.

대구경북디자인진흥원이 운영하고 있는 '더나누기'는 2010년 '버려지는 자투리 원단이 너무 많아 아깝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고급스러운 기능성 소재의 원단을 그대로 폐기 처분하는 것보다 이를 잘 활용해 작은 소품을 만들면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더나누기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당시 작은 작업장에서 낡은 재봉틀 두 대로 자투리 원단을 활용한 슬리퍼가 만들어졌고, 2011년 '더나누기'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출발하게 된다. 자원 순환과 일자리 창출 등 여러 사회적 효과로 주목을 받았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더나누기'는 섬유기업의 생산 및 가공 과정에서 남는 원단을 활용, 가방 등의 업사이클링 제품을 꾸준히 만들어오고 있다. 자투리 원단이라고는 하지만, 원단 품질은 밀리지가 않는다. 주로 군용 텐트, 의자 등받이, 창문 블라인드 등에 쓰이는 견고하고 고급스러운 원단이기 때문이다.

디자인 측면에서는 원단의 특성을 살린 모던하고 심플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또 일부 제품은 작가들과의 컬레버레이션을 통해 만들어졌다. '더나누기'는 2018년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라는 '레드닷 어워드(Red Dot Award)'에서 디자인 콘셉트 그린 부문 최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더나누기' 제품이 국내 기업의 친환경 행보에 함께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대구경북디자인진흥원 관계자는 "'더나누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업사이클링 제품은 의미도 좋고 구매자에게도 기분 좋은 제품, 특히 미래의 가치를 이끌어갈 젊은 층에게 소구할 수 있는 제품이 될 수 있도록 고민과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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