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대 박사의 '똑똑한 스마트 시티·따뜻한 공동체'] 도시의 지식은 시민의 지식…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지능공동체

  • 김희대 대구TP 기획평가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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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26 08:55  |  수정 2023-05-26 08:56  |  발행일 2023-05-26 제21면
〈도시의 강한 회복 탄력성, 도시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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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도 더 된 이야기다. 석사과정 교환학생 자격으로 미국 피츠버그에 있는 카네기멜론대학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전자상거래가 한창 붐이었고 대학원 수업에서도 '웹기반 비즈니스모델개발'이라는 과목이 인기가 높았다. 수업을 마친 어느 날 우연히 격론을 벌이고 있는 학생과 교수를 목격하게 되었다. 학생은 수업에서 발견한 교수의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교수는 설명하기를 반복하며 30분 이상 대화를 이어갔다. 격의 없이 이어지는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한국식 수업방식에 익숙했던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수업뿐만 아니라 학회나 브라운백세미나 같은 데서 비슷한 상황을 자주 목격하면서 이것이 미국 지식사회 전반에 펼쳐진 보편적인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이 강한 이유는 높은 군사력이나 경제적 지위가 아니라 스스럼없이 의견을 개진하고 자기 지식을 증명하며 공동체의 지식 경계를 넓히는 데 애쓰는 지식공유문화라는 걸 그때 알았다. 이런 지식문화가 한국의 교실에도 가능할까. 지식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선생이 많고 토론을 지적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풍토에서 지식을 생성하고 공유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는 쉽지 않다.

美 대학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 정착
공동체 지식 경계 넓히는 데 도움

신뢰할 만한 온라인플랫폼 기반으로
시민들 자유롭게 지식 창출·유통
스마트도시 경쟁력 키우는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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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대 (대구TP 기획평가팀장)

국가 단위뿐만 아니라 도시 차원에서도 지식을 공유하는 환경은 중요하다. 도시의 경쟁력, 회복력 그리고 지속가능성은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지식공유플랫폼'에 달려있다는 것이 최근 연구 결과다. 'MIT Technology Review'의 AI 특파원인 멀리사 하이킬래(Melissa Heikkila)는 스마트시티를 도시가 만들어 활용하는 정보통신기술 솔루션이 아니라, 그 도시 구성원의 재능, 상호 관계, 주인의식과 결합하는 하나의 지식공유체계라고 지적하였다.

나아가 유엔개발계획(UNDP)은 스마트시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도시의 다양한 주체들, 시민과 행정, 대학과 기업이 유기적으로 네트워킹하며 지식의 학습역량을 높이는 도시지능이라고 설명한다. 도시의 지식공유플랫폼은 도시지능(city intelligence)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도시지능은 스마트시티 경쟁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도시가 잠깐 앞서가는 것 같지만, 지식을 공유하는 도시지능이 높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도시지능은 스마트시티가 만드는 다양한 종류의 도시 혁신을 견인한다.

높은 지능을 가진 세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기 도시지능이 높은 도시 헬싱키가 있다. 인구 65만의 작은 도시 헬싱키는 2050년 86만명으로 인구가 늘어날 것을 대비해 56만개의 일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도시 밀도와 교통수단 증가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스마트시티를 구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도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며 도시 구성원의 활발한 지식공유를 돕는다. 헬싱키의 스마트시티 지원기관인 포럼비룸헬싱키(Forum Virum Helsinki)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와 헬싱키 데이터개방 플랫폼(Helsinki Region Infoshare)은 도시의 전문가와 시민과학자가 도시문제와 솔루션에 직접 참여하여 다양한 의견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도시지능을 높이는 플랫폼이다.

한편 헬싱키는 도서관을 새롭게 활용함으로써 도시지능을 획기적으로 높여 왔다. 헬싱키 중앙도서관 'Oodi(우디)'도서관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우디는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도시의 모든 것을 접할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전통적인 도서관의 역할인 책을 빌려주는 공공 도서관을 뛰어넘어 도시의 지식을 공유하고 유통하는 핵심 거점 역할을 수행한다. 전시와 공공 강연 및 영화관, 레스토랑, 카페 등 기본 인프라 시설뿐만 아니라 토론을 위한 가변적인 회의실, 어린이를 위한 놀이 시설, 재봉틀부터 3D프린트기까지 예약하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실험 공간을 제공한다. 워크숍 공간과 열린 대화를 할 수 있는 아고라 공간이 있다. 크고 작은 공간에서 시민이 리빙랩 실험을 수시로 진행하며 도시 구성원의 지식 창출과 지식 공유를 돕는다.

도시지능을 높이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가장 먼저는 시민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고 구성원의 공감대를 확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민을 '정보통신기술 사용자' '공동 창작자' '민주주의 참여자' '도시문제 해결의 공동파트너' 등의 복합적인 역할 수행자로 정의하고, 시민이 도시의 지식 창출과 유통에 활발하게 개입할 수 있는 개방적인 정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둘째, 신뢰할 만한 지식공유플랫폼을 구축하는 도시의 다양한 채널이 필요하다. 도시의 지식을 공유하는 온라인 형태의 플랫폼은 도시문제은행, 오픈데이터 플랫폼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쌓인 지식과 데이터는 신뢰성과 운영의 독립성이 요구된다. 도시의 지식공유 거점이 되는 오프라인 채널로 도서관의 역할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앞서 설명한 헬싱키 우디도서관 사례처럼 시민이 다양한 실험과 암묵지의 유통을 책임지는 거점으로 도서관을 활용할 수 있다.

셋째, 도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경험을 축적하여야 한다. 대구 도시문제발굴단이 좋은 사례이다. 도시문제발굴단은 스마트시티에 적용할 서비스를 위해 자발적으로 시민이 모여 10주간의 훈련기간에 도시를 이해하고 각종 도시문제를 정의하며 해결 방향성을 제안하는 활동을 한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73명의 시민이 50개의 도시문제를 정의하였으며 이 중에 16개가 스마트시티 서비스로 개발되었다. 도시문제발굴단에서 훈련한 시민은 '시민과학자'로 위촉되어 도시의 골목과 현장에서 도시의 문제와 해결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넷째, 지식 공유에 대하여 투입대비 효과를 기대하는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도시에서 지식을 유통하고 데이터 축적을 시작했다고 해서 당장 기계적인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혁신은 시간의 함수다. 더닝 크루거효과(Dunning-Kruger effect)에서 증명한 것처럼 지식이 경험과 결합하여 안정화된 결과를 만들려면 임계치를 넘어서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인공지능의 발전상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보편적 지식의 시대는 끝났다. 도시도 인공지능과 협업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인공지능과 협업하는 도시가 되려면 구성원의 집단지성과 다양한 지식 센스에서 감지된 정보를 통합하고 전달하여 도시지능을 높이는 지식공유체계가 준비되어야 한다. 도시지능은 흔들림 없이 도시를 혁신하는 힘이다. 수시로 바뀌는 거버넌스 상황에서 도시의 혁신을 유지하려면 사중 나선형으로 진화하는 높은 시민력, 솔루션 개발과정에 민간영역의 확대 그리고 높은 도시지능이 필요하다. 우리 도시의 도시지능은 어느 정도인가 자문해 볼 일이다. <대구TP 기술인프라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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