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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
올 상반기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인기를 끌었다. 학교폭력의 희생자였던 문동은(송혜교 분)이 가해자 박연진(임지연 분)에게 복수하는 스릴러물로 전형적인 권선징악, 인과응보 주제의 드라마다. 작가 김은숙은 말한다. "악(惡)을 응징하기 위해서는 '글로리(영광)'를 포기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망가뜨리기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적당히 악과 타협하면서 공생하는 편을 택한다. 따라서 현실에서 단죄되어야만 하는 악의 실체가 수면 아래로 파묻혀버리곤 한다."
현실에서 악이 제대로 단죄되지 않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선거관리위원회 간부 자녀 특혜 채용' '시민단체가 수령한 국고보조금 감사 결과 314억원 횡령 사실 확인' 등의 기사가 신문 지면을 장식한다. '먼저 타 먹는 사람이 임자' '먹지 못하면 바보'라는 유행어가 히트하기도 한다. 한국전력의 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뼈를 깎는'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했는데 오히려 억대 연봉자 수가 늘었고 임원들은 외유성 출장을 다닌 사실이 밝혀졌다. 억대 연봉 성과급과 임금 인상분 반납, 사택 이용 등은 양보할 수 없지만 지점에 들어가는 신문을 끊겠다는 어이없는 자구책으로 국민의 마음을 허탈하게 만들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은 '마지노선' 진지 안에서 안도하다가 마지노선을 우회한 독일군에게 항복했다. 중국의 마지막 왕조였던 청(淸)이 망하기 전 관료들은 그럴싸한 말로 백성을 속이고 황제를 기만하여 풍전등화의 난세를 태평세월로 둔갑시켰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여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진지한 자세로 쇄신해야 함을 절감한다. 가짜 태평세월, 마지노선 요새가 주는 안도감에서 벗어나 악습과 잘못된 시스템을 개선한다면 재도약의 발판을 다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핵심역량에 집중할 수 있고 올바르게 자원이 투입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이 회복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따박따박 월급 받아 살림과 육아를 하는 워킹맘들과 인생을 갈아 넣지 않고는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성실한 직장인 아빠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사회는 투명해지고 있고 소비자는 스마트해지고 있다. 스포츠와 문화로 부정과 비리를 가릴 수 있었던 과거에 비해 적폐가 적나라하게 밝혀지는 작금의 정치를 보면 개탄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가 투명해지고 있다는 희망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은 공시 시스템을 통해 자정(自淨) 작용이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실적발표, 투자설명회를 통해 기업의 자원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주주들에게 투명하게 공유하기 때문에 방만 경영이 사전에 예방되는 편이다.
'더 글로리'에서 악은 단죄되고 학폭 가해자는 파멸을 맞이한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결말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권선징악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위기를 외면하면서 웅크리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럴수록 더욱 용기를 내서 개혁과 혁신에 도전해야 한다. 난공불락의 마지노선 요새도 없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역전의 가능성이 있기에 스포츠 경기도, 사업도, 인생도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역사는 전진하고 게임은 계속되어야 한다. 배구 슈퍼스타 김연경 선수는 말한다. "'계속해봐야 진 경기인데 그만할게요' 하는 선수는 없다"고.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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