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대 박사의 '똑똑한 스마트시티·따뜻한 공동체'] 공감도시:생성형 인공지능에 살아남는 법…'WITH AI' 시대로 전환하라

  • 김희대 대구TP 기술인프라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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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23 09:41  |  수정 2023-06-23 09:42  |  발행일 2023-06-23 제21면
인공지능이 공감의 영역까지 침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찾기보단
기계와 협력할 수 있는 영역 모색
인간이 살아남는 확실한 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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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대 (대구TP 기술인프라지원단장)

지난 6월10일, 미국의 수학자이자 반기술주의자인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가 죽었다. 그의 본명보다 FBI에서 붙여준 유나바머(Unaboomber)로 더 많이 알려진 카진스키는 17년간 16번의 폭탄 테러를 통해 3명을 살해했으며 2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산업화로 인류의 존엄성과 자율성이 박탈당하고 종국엔 말살당할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에 입각해 과학자와 기업가들을 상대로 폭탄테러를 저질렀다. 그가 잡히기 전 언론사를 통해 발표한 '산업사회와 그 미래' 기고문을 보면 현대 기술문명이 인류를 재앙으로 몰고 갈 것이며 이를 피하기 위해 인류는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한다.

획기적인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카진스키와 비슷한 목소리가 유령처럼 등장한다. "새로운 기술은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우리를 지배할 것이며 결국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주장으로 사람들을 불안으로 내몰아 간다. 처음 마차가 등장했을 때,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 자동화 기계가 등장했을 때, 컴퓨터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매번 똑같은 목소리를 들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에 연일 세계가 놀라고 있다. 오픈AI의 '챗GPT'나 구글의 '바드' 같이 대규모 언어를 기반으로 학습한 챗봇은 마치 이야기하듯 사용자가 묻기만 하면 풍성한 답을 제공한다. 이미 오래전에 죽은 바흐나 베토벤의 음악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새로운 바흐나 베토벤 풍의 음악을 작곡한다. 텍스트 명령만 내리면 몇 초 만에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 내는 생성형 AI화가도 있다. 게임기획자 제이슨 앨런이 미드저니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출품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은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는 '창의성'과 '공감' 영역이다. 다른 영역은 인공지능이 대체하더라도 창의성과 공감이 필요한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였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은 이런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미국 러트거스(Rutgers)대학 내 '예술과 인공지능연구소'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일종인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을 변형한 '창조적 적대 신경망(CAN)'을 이용하여 인간이 그린 것과 유사하지만 종래의 예술 사조 범주에 없는 전혀 새로운 그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지난 4월에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이 발표한 인공지능 공감도에 관한 연구 결과는 소름 끼칠 정도로 충격적이다. 연구팀은 공개적이고 전문적인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게시판에 올라온 의료 환자 질문을 무작위로 선정하고, 이 질문에 대한 인간 의사의 답변을 받아서 챗GPT의 답변과 직접 비교했다. 정보의 질 측면에서 인간 의사는 5.0만점에 대략 평균인 3.3점 부근에서 정점을 찍었는데, 챗GPT는 평균값이 4를 훨씬 넘었다. 문제는 공감도를 평가 결과다. 인간 의사의 평균 공감 점수는 약 2인데, 기계의 평균 공감값은 약 4이다. 정보의 질과 공감도 모두 기계에 뒤졌다는 것은 정말 의외의 결과다.

생성형 AI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행정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는 스마트시티 영역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미 두바이는 버스 운전자의 상태를 모니터링 하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통해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사고를 65% 감소시켰으며, 로스앤젤레스의 AI 기반 시스템은 대기 질을 실시간으로 감시하여 전달함으로써 오염 물질 감지는 물론 시민들의 배출량 절감을 돕는다. 문제는 이러한 인공지능으로 바꾸는 도시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장악한 도시에서 시민들이 어떤 삶을 살 것이며, 도시의 일자리 전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시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도시 지능을 어떻게 높여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생략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생성형 인공지능이 바꾸어가는 도시 미래에 대한 염려가 많다. 생성 AI 개발 속도를 잠시 중단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지난 3월28일, 미국 비영리단체 '미래생명연구소(FLI)'는 "생성 AI에 대한 윤리적·안전성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개발을 약 6개월 잠정 중단하자"는 공개서한을 발표하였으며, 5월29일에는 비영리 연구기관인 'AI안전센터(CAIS)'가 "AI가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및 핵전쟁과 동일한 수준의 멸종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내용의 'AI 위험에 대한 성명서(statement of A.I. risk)'를 발표하고 서명 촉구에 나섰다.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챗GPT를 만든 오픈 AI 최고경영자 샘알트만,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인 데미스 하바비스까지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새로운 기술이 어떻게 단계를 높여가며 진화해 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난 몇 세기 동안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나타나는 우려를 불식시켜 왔으며 러다이트 운동이나 유나버머 같은 과격한 저항을 통과하면서 다음 단계로 진화해왔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인간에게 생명을 만드는 일이 남아 있는 한 인류는 멸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나 생성형 인공지능같이 어느 시대나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등장하였지만 생명을 이어가는 인간은 항상 이를 극복하며 앞으로 나아갔음을 오랜 인류 진화의 역사가 증명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쩌면 질문의 방향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인가(Beyond AI)'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기계와 더 잘 협력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인가(with AI)'가 더 적절한 질문일 것이다. 기계는 생명을 만들 수 없다. 기계는 협력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같은 개체와 공존하고 협력하거나 불완전을 통해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능력을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다. MIT 미디어랩의 토드 마코버 교수가 말한 창의성에 대한 정의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토드교수는 창의성을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고,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과 느낀 감정을 공유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도시는 지금이야말로 관계맺음과 의미를 만드는 일에 집중할 때다. 인공지능 기반 챗봇 '레플리카'가 훈련을 통해 인간과 텍스트 주고받으며 개인적으로 대화하는 경험을 아무리 촘촘하게 제공하더라도 공동체의 집단 공감을 생성할 수는 없다. 완전함을 추구하는 기계는 불완전함을 흉내 낼 수 없다. 불완전한 인간만이 연대를 통해 강해지고 진화한다. 이웃을 느끼고 사랑하고 교감하며 배우고 훈련하는 도시가 살아남는 도시다. 의미와 감정을 공유하는 공감도시야 말로 '포스트 AI시대'를 준비하는 확실한 길이다.

<대구TP 기술인프라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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