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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
영화 '밀정'을 보신 분들은, 송강호 배우가 연기한 이정출이라는 인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바로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소재로 만들었고, 이정출은 바로 황옥 경부를 모델로 한 캐릭터였지요. 그런데 그가 의열단원이었는지, 일본의 밀정이었는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황옥은 1887년 경북 문경의 집성촌에서 태어났어요. 마을에서 세운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총독부의 재판소 서기로 근무하던 그는,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밀정으로 지목되어 배척을 당하자 귀국하였어요. 실제로 상하이에서 입수한 임시정부의 정황을 총독부에 보고한 것을 보면 밀정이 틀림없습니다.
황옥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20년 3월 경기도경 고등경찰과 경부로 특채가 되지요. 일본 경찰의 중간 간부직에 오른 후에도, 그는 민족운동가들과 계속해서 접촉하였습니다. 나아가 고려공산당의 간부가 되어 대표자들을 선발, 1922년 1월 소련의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보냈어요. 그들에게 위임장, 국경통과 여행증과 여비를 지급한 것도 황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은 항상 김시현과의 동지적 결합에 의해 진행되었지요. 처음 그들의 만남은, 황옥이 대구경찰서에 체포된 김시현을 경성으로 호송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김시현이 국내에 잠입할 때마다, 황옥은 그에게 통행증과 자금을 지급했어요. 아울러 황옥의 집안에는 의열단에 가담한 이들이 6명이나 됩니다. 그중에 3명은 옥사 또는 병사했어요.
1923년 2월 황옥은 중국 내의 독립운동을 정탐한다는 명목으로 출장을 가서는, 의열단장 김원봉을 만나 '조선독립을 위해 분골쇄신할 것을 서약'하고 의열단원이 됩니다. 그리고 국내로 폭탄을 반입하는 작전에 가담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일본 경찰에 의해 가담자들이 모두 체포되고 폭탄도 압수당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법정에서 모두를 놀라게 하는 진술을 하고 말았어요. 바로 자신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의열단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하였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동지들은 그를 배신자라며 성토했어요. 하지만 김시현과 같은 10년형을 선고받았고, 1929년에 함께 출옥하였습니다. 그가 일본의 밀정이었다면 왜 이렇게 형기를 다 마쳐야 했을지 의문이지요.
더구나 '동아일보'가 남은 가족의 생활고를 전하자, 많은 사람이 의연금을 보냈다고 합니다. 비록 스스로 밀정이었다고 진술했음에도, 해방 이후 김시현은 그와 함께 활동했고 끝까지 황옥을 독립운동가로 인정하고 있었어요. 김원봉도 그를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다 불행히 관헌에 체포된 애련한 자"라고 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정출이 감옥에서 나와 일본 경찰들에게 복수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 부분은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있는 영화적 상상력입니다. 그리고 공유 배우가 연기한 김우진(김시현)보다 형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김시현이 네 살이 많았어요. 영화 '밀정'도 역시 실패로 끝난 역사를, 꿈꾸는 역사로 재현해 낸 것입니다.
황옥은 밀정이었을까요, 아니면 독립운동가였을까요? 아마도 밀정이기도 했고 독립운동가였기도 했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이중 스파이었을지도 모르지요. 황옥은 법정증언으로 말미암아 아직 서훈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의 증언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결국 그는 밀정을 가장한 독립운동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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