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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
막내가 고등학교를 5년 과정으로 다니고 있다. 쉽게 말해 삼수생이다. 공부도 DNA라고 한다. 아빠가 학창시절에 공부로는 결코 기죽지 않았으니 아들도 잠복 중인 DNA가 언젠가는 활성화되리라 믿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그저 잘하리라 믿기만 할 뿐 특별히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사실 무관심하게 지내 왔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3대 조건이 있다고 한다. 바로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다. 다른 2가지는 몰라도 하나는 확실히 조건을 성취하고 있다고 자위하며 지내왔는데, 최근 이마저도 흔드는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에 심히 분노하고 있다.
'육모'니 '킬러 문항'이니 하는 생전 처음 듣는 용어가 언론에 연일 오르내린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혹시나 해서 '킬러 문항'을 검색해보니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초고난도 문항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육모'는 수능 대비 6월 모의고사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교육은 노동, 연금과 더불어 현 정부의 3대 개혁과제이다. 모두 공감되는 분야이다. 특히 교육의 경우, 사교육시장의 지나친 팽창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대표적인 분야로서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 문제는 목표가 아니라 방법이다. 경위야 어떻든지 간에 11월 입시를 6개월도 채 남기지 않고 시험 출제 방향을 바꾼 것은 옳지 않다.
담당자가 업무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경질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기를 놓쳤다면 입시를 목전에 둔 지금이 아니라 내년이나 그 이후에 제반 문제점들을 차분히 검토한 후 발표했어야 한다. 성급한 졸속 개혁의 실패 사례는 역사에 수없이 많다. 더욱이 백년대계라는 교육의 개혁은 그 어떤 분야보다 신중히 검토되어야 한다.
사교육 위주의 기형적인 입시를 포함한 교육제도 전반이 개혁되어야 하지만, 그 책임을 속칭 일타강사의 고액 연봉이나 운동권 출신이 사교육 시장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논란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스타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와 달리 연봉이 수백억 원에 이른다는 이유로 일타강사들을 무조건 죄악시하는 것은 마녀사냥이다. 탈세와 같은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얻는 수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하에서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 아쉬운 점은 SNS를 통하여 호화주택이나 고급 외제차, 심지어 통장잔고까지 자랑하는 일부 일타강사의 잘못된 부의 과시이다.
일타강사가 되어 막대한 수입을 얻으려면 소수의 상위권 학생이 아니라 중간 혹은 그 이하 다수의 수험생들을 상대로 강의하여야 한다. 아직까지 일타강사들이 자신들이 얻은 막대한 부를 학생들이나 교육제도의 발전을 위해 기부를 했다는 소식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법조계에서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전관비리처럼 일타강사가 자신의 노력에 대하여 정당한 평가를 받고자 한다면 그만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특징 중 하나는 정치가 개입하는 순간 모든 영역에서 갈등이 심화되고 망가진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금배지 욕심에 소속 정당의 홍위병이 되는 순간 교육제도 역시 무너진다. 독재정권하에서 취업이 어려웠던 386 운동권 출신들이 사교육 시장에 진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입시제도의 왜곡을 그들 탓으로 돌리는 것은 지나친 논리비약이다.
이왕 입시제도가 논란의 중심에 섰으니 이번 기회에 정부와 여야가 협력하여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들이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제대로 된 교육제도가 만들어지기를 소망한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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