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사교육 문제, 얼마나 심각한가

  • 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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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03  |  수정 2023-07-03 06:58  |  발행일 2023-07-03 제26면
공정경쟁 붕괴된 교육시장

사회계층 세습화 심화시켜

4차산업 시대 창의 역량의

'Y형인재' 선발·육성을 위한

교육·입시제 전면 개혁해야

[아침을 열며] 사교육 문제, 얼마나 심각한가
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

윤석열 대통령의 '공정수능' 지시 이후 킬러문항이 이슈가 되면서 사교육 문제가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일타강사들이 킬러문항 특강과 고액과외로 연간 수백억 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킬러문항으로 상징되는 사교육 시장의 이권 카르텔에 대한 사법처리를 시사했다. 일타강사와 일부 학부모들이 '킬러문항 배제'에 반발하고 있고,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야당도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사교육비는 26조원에 달하였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1만원이고, 사교육 참여율은 78.3%에 달하였다. 서울에는 학원 개수가 2만4천여 개로, 편의점 개수(8천500여 개)와 카페 개수(1만7천여 개)를 합한 숫자와 맞먹는다고 한다. 가히 사교육 공화국이다.

사교육 양극화 문제도 심각하다. 소득 상위 20% 가구는 매월 음식료품비(63만6천원)의 2배에 달하는 114만3천원을 자녀 학원비로 지출하고 있다. 그리고 하위 20% 가구는 음식료품비(48만1천원)와 맞먹는 48만2천원을 자녀 학원비로 지출하고 있다. 여기에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모든 소득계층에서 사교육비가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고 노후대비를 어렵게 하고 있다. 그리고 소득 양극화와 사교육 양극화가 상호작용하면서 교육시장에서 공정경쟁을 붕괴시키고 사회계층 세습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취업 절벽에 신음하는 청년들이 자녀를 낳을 엄두를 내기 어렵고, 이것이 망국적 초저출산의 핵심적 원인이 되고 있다.

사교육 주도 교육시장은 또한 공교육 붕괴를 가속화시키고, 교육 본래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교육의 목적과 기능은 개인의 잠재적 역량을 고도로 발현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사교육은 철저하게 성적서열경쟁과 남을 이기는 경쟁에 초점이 있고, 이를 위하여 선행학습과 킬러 문제풀이 요령을 훈련시킨다. 공교육 붕괴의 일차적 책임은 공교육에 있지만, 학원의 선행학습은 공교육 붕괴를 심화시킨다. 학원에서 이미 선행학습을 한 학생은 학교 수업에 집중할 수 없고, 선행학습을 받지 않은 학생은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도 힘들다. 사교육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내신성적 중심으로 대입 수시전형을 만들었지만, 강남 학원가에서는 학교별, 학과별 내신 대비반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교육 환경에서 사교육은 생존을 위한 필수과정이 되었다.

변별력을 이유로 킬러문항과 킬러논술을 출제하지만, 이것은 사교육 시장 양극화와 사교육 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킨다. 특히 킬러문항과 킬러논술은 공교육 과정 내에선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다. 학원은 창의력 배양보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내용으로 킬러(초고난도) 문항을 만들어 집중적으로 훈련시킨다. 한 문항 차이로 자신이 가고자 하는 대학과 전공선택의 운명이 갈라지는 현행 입시제도에서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성적서열경쟁중심의 교육체제는 기본적으로 획일적 주입식 강의와 단답식 훈련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표준화된 'X형인재'를 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제4차 산업혁명·창조경제 시대에는 인성, 창의성, 진취성, 전문성을 겸비하고 창의적 혁신역량을 지닌 'Y형인재'를 요구한다. 성적서열경쟁체제는 막대한 사교육비, 초저출산 문제, 시대에 맞지 않은 인재 육성 등으로 개인의 삶의 질과 국가 경쟁력을 근원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킬러문항 배제를 넘어 중고등학교 교육이 'Y형인재'를 양성하고, 대학이 'Y형인재'를 선발·육성할 수 있도록 교육 및 입시 체제의 전면적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또한 교육개혁이 성공하려면, 학벌 중심의 단층노동시장 개혁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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