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시선] 한국은 '벨 에포크'인가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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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06 06:59  |  수정 2023-07-06 07:01  |  발행일 2023-07-06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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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부국장

최근 페이스북을 '눈팅'하다 확 들어오는 단어를 발견했다. 유럽 출장을 다녀오면서 소감을 남긴 글인데, '지금 대한민국은 벨 에포크인가'라고 했다. 과문한 탓인지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벨 에포크'는 프랑스어로 '좋은 시대' '아름다운 시대'라는 뜻이다.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프랑스가 사회, 경제, 기술적으로 번성했던 시대를 일컫는 표현이다. 당시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 대부분이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 유럽 문명권 최고 전성기로 부르기도 한다. 철도, 자동차, 비행기, 전화, 영화 등 새로운 발명품이 나왔다. 유럽민의 삶에도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마냥 좋았을까. 결코 아니었다. 평온한 표면 아래 긴장이 흘러넘쳤다. 영국의 세계 패권에 독일과 미국이 도전하고, 드레퓌스 사건과 같은 정치적 분열이 사회를 흔들었다.

흥미로웠다. 대한민국은 '과연 벨 에포크인가' 생각하게 됐다. 일단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다. 유럽은 지금 난리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장 많은 고통을 받는 대륙이 유럽이다. '좋은 시대' '아름다운 시대'라고 말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프랑스에서 인종 차별 문제로 대규모 시위까지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 경찰이 알제리 출신의 17세 소년에게 총으로 사살하면서 벌어진 사태다. '아름다운 시대'는커녕 폭력과 야만의 시대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벨 에포크라고 말할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 대한민국은 어느 때보다 강하다. 국격이 높아졌다. 북핵 위험이 상존하고 있지만, 전쟁의 기운은 없다. 외교 문제도 문재인 정부와 다르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이뤄냈고, 미국과의 동맹도 강화됐다. 진영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지만, '표면적으로' 대한민국은 거의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고 볼 수 있다. 문화도 그렇다. 지금 K팝이 세계를 흔들고 있다. 블랙핑크,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에 '팬덤'을 형성했다. 반도체, 2차전지 기술도 세계적이다. 대한민국은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긴장도 흐른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이어진 진영 논리는 여전하다. 오히려 더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정치적 분열이 대한민국을 불안으로 몰아넣고 있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도 마찬가지다. 과학 대신 정치 논리에 좌우된다. 야권은 객관적인 자료나 과학적 접근을 통해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국민 불안을 교묘히 자극하는 정서적 논리로 접근한다.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는 꼴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도 '깡통 보고서'라며 비판하고 있다. 진영 논리는 무섭다. 사람의 생각을 마비시킨다.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한다. 진영 논리만 따라가게 되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괴담이나 선동에 무의식적으로 동조하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이 '벨 에포크의 시대'라는 데 동의한다. 번영과 긴장이 공존하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문제는 벨 에포크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없다는 데 있다. 번영과 긴장이 넘쳐나면 대한민국에 화학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외부 요인도 작용한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줄타기를 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정치에도 변화의 물결이 자꾸 밀려온다. 제 3지대가 꿈틀대고 있다. 미약하지만, 지금의 '냉전' 정치구도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어느 순간 결정적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과연 대한민국은 어디로 건너갈 것인가.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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